유엔총회 北인권 첫 고위급회의…"파병 북한군, 현대판 노예제 희생양"

2025-05-21

"젊은 북한 군인들이 러시아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돼 현대판 노예제도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탈북 과정을 담은 '열한 살의 유서'의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김은주 씨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고위급 회의에서 "파병된 북한군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싸우는지, 왜 싸우는지도 모른 채 김정은 정권의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엔 총회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이번 북한 인권 관련 고위급회의에서 탈북민과 국제인권단체 등은 생생한 북한의 인권 침해 실상을 증언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해 12월 채택된 유엔 총회 북한인권결의에 따라 열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나 인권이사회가 아니라 총회 차원에서 북한인권 관련 고위급 회의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21일 "유엔 안보리와 인권이사회에 이어 모든 유엔 회원국이 참여하는 유엔의 대표 기관인 총회 차원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폭넓은 참여와 관심을 제고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김 씨와 함께 이날 회의에 참석한 또 다른 탈북민 강규리 씨는 2023년 10월 가족과 목선을 타고 탈북한 경험을 증언했다. 강 씨는 "5살 때 할머니가 토속신앙을 실천했다는 이유로 가족 전체가 평양에서 시골로 추방됐다"며 "북한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종교나 신념은 김씨 가문의 세습통치를 정당화하는 주체사상뿐"이라고 비판했다.

강 씨는 또 "북한 당국은 코로나19를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구실로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강 씨는 "내 친구 중 세 명이 처형됐는데 이중 두 명은 단지 한국 드라마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처형됐다"며 "한 명은 겨우 19살이었다"라고 증언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국경 폐쇄와 국제사회로부터의 인도적 지원 제한, 정보 접근 차단 때문에 북한 주민의 생활 여건이 악화했다"며 "북한이 새로 제정한 법으로 인해 주민의 이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노동권이 더 제한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북한 당국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이른바 '3대 악법'으로 불리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해 주민의 생활과 사상을 통제하고 있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북한의 대외 무기 수출 문제를 언급하며 "북한 인권 문제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뿐 아니라 중동과 동유럽을 포함한 국제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강하게 반발했다. 당사국 자격으로 유엔 회원국 중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김 성 주유엔 북한 대사는 탈북민들을 향해 "부모와 가족도 신경 쓰지 않는 지구 상의 인간쓰레기"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북한인권위원회와 같은 인권 단체들은 한·미 등의 후원으로 선동과 조작을 하는 집단"이라며 "오늘 회의는 이런 사기꾼들의 생존을 위해 열린 것"이라고 비하했다. 다만 북한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자체가 이날 회의를 아프게 받아들인다는 방증이란 지적이다.

이에 한국 정부 대표로 참석한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김은주 씨와 강규리 씨 같은 용감한 탈북민들의 가슴 아픈 증언은 이들이 피해온 (북한 당국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이어 북·러 군사협력을 겨냥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제조한 무기로 인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며 "북한이 개발하는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전 세계 비확산 체제와 국제 평화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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