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728조 원 규모의 ‘슈퍼 예산’을 편성한 이재명 정부가 부처와 각종 위원회도 늘리며 몸집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 공무원 정원 역시 2000명 안팎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면 정부의 민간에 대한 관리·감독이 강화되고 책임감 없이 훈수만 두는 각종 자문위원회가 우후죽순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법률과 대통령령에 근거한 행정기관 위원회는 총 575개로 1년 전보다 15개 감소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AI)위원회, 국가바이오위원회, 국정기획위원회 등이 신설되고 국무총리 소속 포항지진피해구제심의위원회, 2023새만금세계스카우트잼버리정부지원회 등이 폐지된 결과다.
575개 위원회 가운데 행정기관 사무를 일부 부여받아 독자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산업통상자원부무역위원회·전기위원회 같은 ‘행정위원회’가 40개였다. 나머지 535개는 행정기관의 자문에 응해 전문적인 의견을 제공하거나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는 ‘자문위원회’였다. 행안부는 “각 부처의 위원회 운영 실적 자체 점검 및 평가 결과 등을 토대로 총 158개 위원회를 선정해 폐지, 통폐합, 존속 기한 설정 등을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위원회 숫자가 줄었지만 현 정부 들어 다시 늘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과거 정부는 대내외 여건 변화 등에 따라 필요성이 감소한 위원회 등을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불필요한 위원회가 설치되지 않도록 사전 협의 절차를 마련해 뒀다. 하지만 이 같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2012년 505개에 불과했던 위원회 수는 2022년 636개로 10년 만에 25.9%나 증가했다.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전체 636개 위원회의 39%인 245개를 감축한다는 목표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실제로는 3년간 고작 61개를 줄이는 데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큰 정부를 지향하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해 부처와 산하 위원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당정이 이달 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예정인 정부 조직 개편안에는 중앙 행정기관을 기존 48개(19부·3처·20청·6위원회)에서 50개(19부·6처·19청·6위원회)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행정기관이 2개 늘면서 그에 딸린 위원회도 덩달아 증가할 수밖에 없고 공무원 정원 증가 역시 불가피하다.
여기에 “음악·드라마·영화·게임 등 다양한 대중문화의 국가적 비전 수립과 민관 협업 체계를 구축하겠다”며 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새로 만들어진다. 국정기획위원회도 2개월 활동을 종료하면서 국정과제 이행 점검 등을 위한 국가미래전략위원회(가칭) 신설을 건의해 간판만 바꿔 달 것으로 전망된다. 북극항로위원회 신설 또한 예고된 상태다. 한 퇴직 고위 공무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100일간 업무 스타일을 고려할 때 이 대통령의 관심사에 따라 대통령 직속 위원회와 그 실무위원회 등이 계속해서 생겨날 개연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위원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부실 운영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올해 위원회 참석 수당, 안건 검토 수당 등 회의 예산은 총 368억 원으로 편성됐다. 위원회 1개당 6400만 원꼴이다. 그러나 86개 위원회는 법령상 개최 요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 1년간(2024년 7월~2025년 6월) 단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최소 15%는 식물 위원회라는 얘기다.
이에 유사·중복 성격을 갖거나 운영 실적이 저조한 부실 위원회를 적극 폐지·통합해 낭비와 비효율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고위 공무원은 “전문성 없는 인사에 ‘명함용 자리 나눠주기’ ‘수당 챙겨주기’ 명목으로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썼던 정부도 있었다”며 “현 정부가 이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과거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새 정부 이달 중 확정되는 국정과제와 연계해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정비계획도 일부 조정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