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문제야말로 ‘회색 코뿔소’ 아닌가

2025-12-31

2025년 벽두 한국 경제는 불법계엄과 탄핵 정국 여파로 시계제로였다. 다행히 새 정부 출범 후 대혼란을 이겨내고 대내외적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걷어냈다. 2026년은 2%에 근접한 성장률이 예상된다. 고물가·고환율, 치솟는 전월세값을 잡는 것도 시급하나 기자의 눈에는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이 땅의 아픈 청춘들이 먼저 어른거린다.

청년 문제의 핵심인 일자리를 보면 그야말로 빙하기다. 15~29세 고용률은 2025년 11월 기준 44.3%에 그치며 19개월 연속 하락했다. 60세 이상 고령층(47.9%)보다 낮다. 구직 활동을 접고 그냥 쉬고 있는 2030 숫자만 73만명에 달한다. 스스로를 ‘전업자녀’로 칭하는 청년들도 있다. 사회로 진입하는 길이 막히면서 그만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기업들이 채용 규모를 줄이고 있는 데다 인공지능(AI) 확산이 몰고 올 여파로 청년 고용률과 실업률, 쉬었음 인구 등 각종 고용지표는 앞으로도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국가데이터처가 내놓은 ‘청년 삶의 질’ 보고서를 보면 청년들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7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31위였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소진되는 ‘번아웃’을 경험한 19~34세 청년도 2024년 기준 32.2%였다. 번아웃 이유로는 진로불안이 39.1%로 가장 높았다. 부동산 자산 불평등이 커지면서 청년들의 허무주의가 확산되고 계층 상승 기대감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청년층이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청년들을 살리지 못하는 사회의 미래는 아찔하다. 무직상태 장기화는 삶의 의욕 저하와 사회에 대한 불만 누적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 성숙에 필요한 사회적 연대도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10년 전 경향신문은 창간 70주년을 맞아 신년 화두로 청년 문제를 던졌다. 헤드라인은 ‘부들부들 청년들 “우리는 붕괴를 원한다”’였다. 리셋된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절규가 실렸다. 지킬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판이라도 뒤집어져야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는 청년들이 어디 한둘일까.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얼마 전 한국 경제의 구조적 이슈로 인구위기, 기후위기, 극심한 양극화, 산업과 기술의 대격변, 지방소멸 등 5가지를 꼽으며 ‘회색 코뿔소’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모두가 알고 있고 오랫동안 많은 경보가 있었음에도 무시하고 방관했을 때 치명적 위협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다. 예고된 최악의 미래를 손놓고 있었다는 점에서 청년 문제야말로 회색 코뿔소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청년들을 달리게 하려면 우선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불공정과 ‘내로남불’ 행태로 그들을 울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오는 6월 치러질 지방선거는 누가 청년 문제 해결에 진심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무대다. 이재명 정부 지지율이 20대에서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고 국민의힘도 청년층 공략에 주력할 것으로 보여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얄팍한 단기적 대증요법 말고 청년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공약이 나와야 할 것이다. 정년 연장 문제 역시 청년 고용 문제를 살피며 접근해야 세대 간 갈등을 피할 수 있다.

저출생 고령화, AI발 노동전환기의 흐름 속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은 쉽지 않다. 특히 복합적 원인이 얽힌 청년 일자리 문제는 국가 시스템의 재구조화에 버금가는 개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밝힌 규제·금융·공공·연금·교육·노동 등 6대 핵심 분야에서 성과를 도출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극대화해야 한다.

청년들이 첫 직장 선택에 공포를 느끼지 않도록 중소기업 일자리에 대한 지원도 절실하다. 현재는 중소기업 입사 후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할 확률이 낮기 때문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끝이라는 인식이 청년층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청년층은 기회의 공정성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만큼 대기업들도 신입 공채를 확대하고 정부 역시 기업들이 신규 채용 여력을 극대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강구하기 바란다.

일자리는 생계 유지 수단을 넘어 자신이 어딘가에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공간이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노동은 세 가지 큰 악인 지루함, 부도덕, 가난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해준다”고 밝혔다. 청년들에게 일할 곳이 없는 디스토피아를 물려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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