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벨리온·뤼튼 등 국내 유망 벤처 29곳이 사우디 정부와 투자기관의 직접 심사를 통과하며 중동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과거 건설·방산 중심이던 한국 기업의 사우디 진출이 이제는 AI·디지털·바이오 등 첨단산업으로 확대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벤처기업협회(회장 송병준)는 중소벤처기업부(장관 한성숙), 주사우디한국대사관(대사대리 문병준)과 함께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서울 강남 안다즈 호텔에서 '2025 중소벤처기업 중동 진출 지원 사업' 최종 대면평가 및 네트워킹 행사를 개최했다고 28일 밝혔다.
사우디는 국가 프로젝트인 '비전 2030'을 중심으로 AI, 엔터테인먼트, 관광, 스포츠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이에 올해 사업은 △AI △바이오 △콘텐츠 △스마트시티 등 4대 신산업 분야 유망 기업을 선발해 중동 진출 기회를 제공하는 글로벌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앞서 벤처기업협회는 국내 딥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1차 서류심사를 통해 112개사를 뽑았고, 이 가운데 최종 29개사가 선정됐다. 당초 27개사로 계획했으나, 사우디 측 요청에 따라 AI 기업 2곳이 추가됐다.
분야별로는 △바이오 7곳(메디사피엔스·닥터노아바이오텍·이마고웍스 등) △여행·콘텐츠 5곳(두왓·쉐어박스·프렌트립 등) △스마트시티 5곳(모빌테크·엔젤스윙·에어빌리티 등) △AI 12곳(리밸리온·딥브레인에이아이·마키나락스·뤼튼테크놀로지스 등)이다.
이번 평가에는 사우디 투자부(MISA), 통신정보기술부(MCIT), 리야드개발청(RCRC), 인공지능데이터청(SDAIA), 스포츠부(MOS), 연구개발혁신청(RDIA), 환경물농업부(MEWA) 등 핵심 정부기관이 참여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의장을 맡고 있는 AI 기업 '휴메인(Humain)'도 영상으로 심사에 합류했다. 국내 벤처기업을 해외 정부와 투자기관이 직접 평가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네트워킹 행사에서는 선발 기업 대표와 사우디 정부 관계자, 중소벤처기업부, 유관기관이 모여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투자·파트너십 기회를 모색했다. 최종 선정된 기업들은 오는 9월 25일부터 10월 1일까지 두바이(UAE)와 리야드(사우디)에서 투자유치 설명회, 1:1 비즈니스 상담, 현지 기업·기관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AI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는 “한국 기업 최초로 사우디 '와에드 벤처스'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고, 현지 법인도 설립했다”며 “이번 프로그램에서 형성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휴메인 등 주요 기관과 협력 기회를 넓혀가겠다”고 말했다.
송병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대한민국 혁신가들과 사우디의 미래 비전이 만나는 역사적인 첫걸음”이라며 “K-벤처가 중동 시장에서 결실을 맺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임정욱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은 성장성과 자금력을 겸비한 시장”이라며 “이번 평가와 네트워킹이 국내 벤처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Interview】문병준 주사우디한국대사관 대사대리
“실질적인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부처와 기관 수장들이 방한한 만큼, 단기간에도 국내 기업에 투자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문병준 대사대리는 27일 안다즈 호텔에서 개최된 네트워킹 행사에서 “과거 건설·방산 중심이던 한국 기업의 사우디 진출이 이제는 AI·디지털·바이오 등 첨단산업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번 행사에 참석한 인사들의 위상을 특히 강조했다. 문 대사대리는 “단순 실무진이 아니라 국장·청장급 의사결정자들이 직접 참여해 실제 투자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며 “초기부터 수억 달러 규모 대형 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수백만 달러 수준의 시범 투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우디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분야는 단연 AI였다”며 “이번에 선발된 AI 기업들은 곧바로 투자와 프로젝트 참여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문 대사대리는 사우디 진출이 인근 국가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사우디가 시작하면 UAE, 카타르, 오만 등이 뒤따른다. 겉으로는 독립국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상호 보완적 관계라 사우디의 결정이 곧 중동 전역으로 파급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행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사대리는 “사우디 측도 이번 사업을 연례행사로 확대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오는 11월 사우디 최대 창업 전시회 '비반(Biban)', 내년 4월 중동 최대 AI 행사 'LEAP'에도 한국 기업을 적극 초청하겠다는 논의가 오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동 시장은 신뢰와 네트워킹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대사관 차원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사우디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후속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