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하반기 결혼식을 준비 중인 류민영(31) 씨는 이달 중에 벌써 웨딩플래너 상담을 고민하고 있다. 주변에서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는 6개월마다 오르니 일찍 계약해두는 편이 좋다”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류 씨는 “비용을 아끼려면 어쩔 수 없지만 1년 반이나 앞서 계약하려니 망설여진다”고 털어놓았다.
올 2월 혼인 건수가 2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을 보인 와중에 고물가와 맞물려 결혼 비용이 오르는 ‘웨딩플레이션’으로 예비 부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가 결혼 시장의 거품을 빼기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더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비 부부들은 예식장 예약부터 난관을 맞이한다. 가장 큰 어려움은 정보 비대칭이다. 대부분의 예식장이 비용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같은 예식장이라도 날짜와 시간대에 따라 대관료와 식대가 상이한 데다 상담 시 흥정이 가능해 비용 예상이 어렵다.
식대 등 기본 비용 또한 높아졌다. 서울에서 내년에 결혼식을 올릴 경우 평균 식대는 8만~9만 원, 꽃 장식을 포함한 대관료는 1000만 원을 뛰어넘는다. 호텔 결혼식이나 고급 예식장의 경우 비용은 더 뛴다. 결혼 준비 대행 플랫폼 아이웨딩에 따르면 최근 인기가 많은 서울 구로구 한 호텔의 예식 비용은 정가 식대 14만 원, 대관료 2100만 원이었다. 300명의 하객이 온다고 가정한다면 약 6300만 원의 비용이 필요한 셈이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중소형 예식장이 사라졌다는 점 역시 가격 인상을 부채질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7년 1032개에 달했던 예식장은 지난해 714곳으로 약 30% 줄었다. 예식장 수는 줄고 혼인 인구는 반등세를 보이니 예약 전쟁도 치열해졌다. 서울 강남구 한 예식장의 경우 1년 전에 전화로만 예약을 받는데 예약 전 방문 상담이 필수적이다. 웨딩플래너와 가족까지 참전해 전화 70~80통을 거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이에 따라 대학 동문회관에서 할인 혜택을 받거나 공공 예식장을 찾는 경우가 늘었다. 서울한방진흥센터 등 25개 장소에서 공공 예식장을 운영 중인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해 106건이던 예약 건수가 올해 218건으로 급증했다”면서 “사설 예식장의 반값에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다는 이점에 매력을 느끼는 부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스드메와 예물 가격도 부담을 지운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대표적인 결혼 준비 대행 업체 다이렉트컴즈의 경우 스드메 비용이 258만 원부터 647만 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여기에 부케와 드레스 착용을 돕는 웨딩 헬퍼, 드레스 추가금 등을 포함하면 100만 원 넘는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금값이 오르면서 가성비 예물을 위해 서울 종로 금은방 일대를 찾는 예비 부부들도 늘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2월 KRX금시장 금 가격이 g당 16만 3530원까지 치솟은 가운데 같은 달 ‘종로 결혼반지’ 검색량(네이버 데이터랩 기준) 역시 5년 새 최고치를 기록했다. 백화점의 명품 반지가 1000만 원을 호가하는 데 비해 종로 일대에서는 100만 원대로도 반지를 제작할 수 있다. 예물을 판매하는 50대 황 모 씨는 “(예비 부부들이) 종로에서 싸게 결혼반지를 맞추고 차액으로 예물 가방·시계를 사 결혼 비용을 아끼려 한다”고 귀띔했다. 무르고 샛노래 촌스럽다며 선호도가 떨어졌던 순금 예물을 재테크 차원에서 문의하는 경우 또한 늘었다고 한다.
이에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결혼 비용을 지원하지만 대상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시가 예식 비용 100만 원을 지원하고 공공시설을 예식장으로 개방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나 지원 대상은 예비 부부 40쌍에 그친다. 공공 예식장을 무료로 대관하고 비품비를 제공하는 ‘서울마이웨딩’의 경우 올해 약 18억 원의 예산이 편성돼 20억 원이던 지난해보다 10%가량 줄었다.
조성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결혼 관련 서비스가 추가금 없이 최초 계약과 동일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는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며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일수록 현금성 지원을 포함해 다양한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