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메이커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8-03

1862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독립국 멕시코에 군대를 보냈다. 이듬해인 1863년 6월 수도 멕시코시티가 프랑스군 수중에 떨어졌다. 정통성을 갖춘 공화국 정부가 지방으로 피신해 항전을 이어가는 사이 멕시코엔 제정이 선포됐다. 오스트리아 황실의 일원인 막시밀리아노 1세가 느닷없이 멕시코 황제로 즉위했다.

그러자 이웃나라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프랑스에 “미국은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대륙에 간섭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즉각적인 철군을 촉구했다. 당황한 프랑스는 1867년 멕시코에서 자국군을 완전히 철수시켰고 멕시코 제정은 무너졌다. 2021년 미국을 방문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당시 멕시코 대통령은 링컨을 “프랑스의 침략으로부터 멕시코를 구해준 은인”이라고 평가했다.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발명한 미국은 정치학계와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거의 매년 역대 최고·최악의 대통령을 뽑는 조사를 실시한다. 거의 매번 링컨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미국 등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 두 사람이 최상위에 랭크된다.

가장 최근인 2024년 미국 정치학자들을 상대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누가 제일 위대한가’라고 물었더니 링컨이 1위, 루스벨트가 2위를 각각 차지했다. 40대 젊은 나이에 대통령에 오른 존 F 케네디와 버락 오바마는 재임 시절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대중과 달리 전문가들은 그들의 업적에 상대적으로 인색한 평가를 내리는 듯하다.

흔히 남북전쟁(1861∼1865) 승리를 통한 흑인 노예 해방이 링컨의 최대 치적으로 꼽힌다. 하지만 전쟁 기간 남과 북 두 쪽으로 갈라진 미국이 전후 다시 통합할 수 있었던 초석을 놓은 점에 더욱 후한 점수를 매기는 이들도 많다.

말이 남북전쟁이지 그 본질은 연방정부에 불만을 품은 남부 몇몇 주(州)의 정치인과 군인들이 일으킨 내란(treason)이었다. 링컨이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면 북군의 승리 후 남부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남군 지휘부 대다수가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링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세에 몰린 남부 측에 최대한 관대한 항복 조건을 제시했고, 남부 지도자나 남군 지휘관들을 겨냥한 정치 보복은 없었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직후인 2일 국내 일간지에 실린 사진 한 장이 단연 눈길을 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양국 대표단과 함께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장소는 미 행정부의 국무회의가 열리는 백악관 캐비닛룸이다.

트럼프 바로 뒤 벽면에는 큼직한 그림이 걸려 있다. 남북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링컨이 북군 지휘부와 대화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 제목은 다름이 아닌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The Peacemakers)이다.

얼핏 남군을 궤멸시킬 작전을 짜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전후 미국에 다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대책 회의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 후 ‘평화 대통령’을 자처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인도·파키스탄 교전, 이스라엘·이란 전쟁, 태국·캄보디아 교전 등에 개입했다. 그 가운데 일부는 휴전 돌입 등 실질적 성과를 이끌어냈다. 북한에도 관심이 지대한 트럼프가 첫 임기(2017∼2021) 때처럼 한반도의 피스메이커를 자처하고 나설지 주목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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