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9일 버마(현 미얀마) 랭군(현 양곤)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아웅산 국립묘지를 참배하기 직전 북한이 폭탄 테러를 일으켰다. 전 대통령은 무사했으나 그를 수행한 고위 공직자 및 언론인 등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순직자 중엔 박정희정부 시절 주미 대사를 지낸 함병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도 포함돼 있었다. 요즘 같으면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 동안 대통령실 관리를 책임지고 국정 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해야 할 비서실장이 왜 대통령과 동행했는지 궁금할 법한 대목이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권부 실세’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통령 공식 수행원 명단에서 빠지면 그 배경이 무엇인지를 놓고 언론이 취재해 비중있는 기사로 보도하던 시절이었다.

1988년 출범한 노태우정부는 탈냉전 흐름을 타고 공산권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이른바 ‘북방 외교’에 주력했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현 러시아)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1990년 6월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일정이 잡혔다. 핵심 의제는 양국이 연내에 수교하는 것이었다. 회담장 공간이 협소해 두 나라 모두 배석자 숫자가 제한됐다. 노 대통령 바로 옆 한 자리를 놓고서 노재봉 청와대 비서실장과 최호중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이 경합했다. 노 실장은 북방 외교를 주도하는 곳이 청와대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으나, 최 장관은 소련 측에선 외무장관이 참여하는데 한국은 외무장관이 배제된다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맞섰다. 결국 노 대통령의 결단으로 노 실장 대신 최 장관이 배석했다.
김영삼(YS)정부가 들어선 1993년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관행에 의문이 제기됐다. YS는 취임 첫해인 1993년 11월 미국 방문 때만 해도 당시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을 공식 수행원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4년 3월 일본·중국을 방문하며 수행원단에서 박 실장을 제외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국내에 없는 동안 비서실장이 국내외 현안을 잘 점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는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잡아 YS 이후의 역대 대통령들은 해외 순방 때 비서실장을 대동하지 않았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에 갔을 때 당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동행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다만 이는 한국이 UAE에 지은 바라카 원전과 관련해 임 실장이 한국과 UAE를 오가며 특사 등 모종의 역할을 맡아 온 특수한 사정 때문이었다.

25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한·미 간 백악관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24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는 이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강 실장이 동행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강 실장의 역할이 대체 무엇인지, 미국에 가서 뭘 하려는 것인지 추측이 분분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비서실장이 동행할 만큼 한·미 정상회담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 실장 본인은 이날 출국에 앞서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구체적 내용과 일정에 대해 말씀드리지 못함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이 임박했는데 한·미 간에 무슨 심각한 이견이 노출된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김태훈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