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이상제(綠耳霜蹄)는
김천택(1687∼1758)
녹이상제는 역상(櫪上)에서 늙고 용천설악(龍泉雪鍔)은 갑리(匣裏)에 운다
장부(丈夫)로 되어나서 위국공훈(爲國功勳) 못하고서
귀밑에 백발이 흩날리니 그를 슬허 하노라
-병와가곡집
한스러워라, 공 없이 늙음이여
‘녹이’라 함은 하루에 천 리를 달렸다는 명마를 이름이다. ‘상제’는 천리마의 흰 말굽이며, ‘역상’은 마굿간이다. 즉 전장을 누벼야 할 천리마가 마굿간에서 늙어가고 있다.
‘용천’은 예전의 명검(名劍)이며, ‘설악’은 잘 드는 칼날, ‘갑리’는 칼집이다. 천하의 명검이 칼집 속에서 울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대장부로 태어나서 나라를 위한 공을 세우지 못하고, 어느새 늙어 귀밑에 백발이 흩날리고 있으니 그것이 서러울 뿐이다.
이 시조의 작자인 김천택은 포도청의 포교였다. 영조 4년(1728)에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전집 『청구영언』을 편찬하였고, 『해동가요』에 자작시조 57수를 남겼다.
나라의 은혜에 보답 못 한 채 늙어 한스러움이 그때의 김천택 만일까?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광복 80년을 맞는 오늘의 노 장부들도 부끄럽고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