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5년마다 ‘선언문’을 내놓는다. 정책 계획서를 넘어 시대의 방향을 규정하는 정치적 나침반이다. 2026년부터 2030년까지를 아우를 ‘제15차 5개년 계획’ 역시 그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주 공산당 20기 4중전회(20~23일)에서 통과된 계획안에 따르면, 과거처럼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기보다 익숙한 목표들인 산업 자립, 기술 회복력, 신중한 거시 관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변화보다는 지속, 개혁보다는 안정이 이 계획의 숨은 주제다.
중국의 5개년 계획은 다목적이다. 중앙 부처와 지방 정부를 하나의 질서로 묶는 장치이며, 재정·산업·구조 정책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체계다. 동시에 이 계획은 중국식 장기 전략의 가교 구실을 한다. 2030년 탄소 배출 정점, 2035년 현대 사회주의 국가 달성, 그리고 기술 강국으로의 부상이라는 목표가 그 다리 너머에 있다. 중국식으로 말하면 2020년 대비 국내총생산(GDP)을 두 배로 끌어올리는 길이다.

하지만 이번 사이클의 공기는 다르다. 더는 고성장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부동산 경기의 장기 침체, 지방정부의 부채 부담, 세계 무역의 역풍이 겹쳤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기술 자립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처럼 다가온다. 베이징은 반도체·인공지능·친환경 제조 분야의 격차를 메우는 일을 국가적 과제로 삼았고, 이번 공보문의 문장들에서는 그 의지가 이전보다 한층 날카롭게 읽힌다. 수요 진작보다는 공급 능력 강화, 소비보다는 생산이 중국의 해법이다.
물론 이런 선택에는 그림자도 있다. 지도부는 소비를 적극적으로 촉진하겠다고 약속하지만, 임금 인상이나 저축률 완화 같은 가계 중심 정책이 실질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은 작다. 소비를 살리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신 베이징은 산업 고도화와 수출 경쟁력 강화를 성장의 안정판으로 보고 있다. 외부 수요가 줄더라도 기술 경쟁력만 확보하면 위기를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방향은 세계에도 파장을 미친다.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와 수입 대체 전략은 계속될 것이다. 이는 세계 상품 시장에서 물가 둔화 압력을 유지하는 한편, 외국 기업들에는 선택적 기회를 남긴다. 녹색기술·헬스케어·자본시장 부문에서는 문이 열리겠지만, 동시에 현지화 압력과 국유기업 중심 경쟁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높아질 것이다.
결국 제15차 5개년 계획은 새로운 ‘책’이 아니라 같은 책의 다른 ‘장’이다. 베이징은 전략의 규칙을 다시 쓰려는 대신 그 규칙을 더 단단히 쥐고 있다. 세계가 불확실성 속으로 흔들릴수록 중국은 자립과 회복력을 안정의 언어로 삼으려 한다. 변화보다 지속을, 속도보다 견고함을 택한 셈이다.
루이즈 루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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