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칼럼은 번외편이다. LA한인타운의 맛 대신 ‘흥’을 다뤄볼까 한다. 뜨거웠던 그 시절, LA 나이트클럽의 역사를 시간여행 하듯 함께 따라가 본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 된 그곳들의 이야기다.
미국서 학교에 다닌 60대 한인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전설의 클럽은 1980년대 마리나 델 레이 바닷가에 위치한 ‘캡틴스 월프’다. 주말이면 한인을 비롯해 동양계 대학생들의 열정이 폭발하는 클럽이었다. 당시만 해도 각 대학 학생회에서 교내 식당을 빌려 하우스파티를 여는 곳이 고작이었던 터라 한인 젊은이들이 춤추고 놀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디스코 열풍이 지나고 춤에 목말라 있던 시대였기에, 그 열기는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했다.
비슷한 시기 타운 클럽을 이끌던 업소는 베벌리길의 ‘투모로우’였다. 밴드와 라이브 공연이 중심이었던 이 클럽은 ‘백바지’, ‘백구두’의 젊은 오빠들이 즐겨 찾았다. 현재는 윌셔길에 있던 ‘익스프레스 나이트클럽’이 이곳으로 이전해 ‘엑스프레스 가라오케’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1980년대 후반, 6가와 맨해튼 인근 지금의 ‘대도식당’ 자리에 유학생 선배들이 ‘탱고’라는 클럽을 열었고, 한참 후에 한국의 유명 무기상이 된 따님을 두신 사장님이 인수하여 ‘플라밍고’로 이름을 바꾼다. 이 따님은 2대 사장으로, 뉴욕에서 건너온 디자이너와 함께 파격적인 인테리어로 클럽을 대성공시킨다. 이 디자이너가 후에 전설적인 요구르트샾 ‘핑크베리’를 만든 고(故) 영 리씨다.
1990년대 타운은 바야흐로 나이트클럽 전성기를 맞았다. 선셋길에 한인 유흥업계를 대표하는 새로운 클럽 ‘아마존’의 등장이 그 시초를 알렸다. 이전까지의 한인 클럽들은 밴드와 가수가 있는 포맷이었지만, 아마존은 한국의 이태원 트렌드를 따라 DJ 중심의 클럽 문화를 도입하며 한인 DJ 나이트의 출발점이 됐다.
이후 한 투자가들이 윌셔길의 ‘록앤로빈’이라는 일본계 클럽을 인수해 플라밍고를 디자인한 영 리를 고용해서 ‘스팍스’라는 초대형 클럽으로 재탄생시킨다. 이후 이 클럽은 ‘벨벳룸’, ‘페리아’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한인타운 최고의 클럽 자리를 이어갔다.
영 리가 디자인한 또 다른 클럽으로는 웨스턴길에 ‘르 프리베’가 있었다. 시연부페 자리로 2층 단독건물에 넓은 주차장까지 갖추고 이층에는 일층 댄스홀을 내려다볼 수 있는 VIP룸까지 갖춘 타운 최대의 시설이었다. 지금은 건물이 헐리고 대형 아파트가 들어서있다.
‘여피스’는 윌셔 선상에 있던 작고 어두웠던 흑인 클럽을 인수 후 대형 나이트로 확장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테리어가 바뀔 때마다 여러 번 이름이 바뀌었지만 한참 동안 ‘카낙’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다가 건물 주와의 문제로 지금은 문을 닫았다.
‘사가’는 여피스의 성공을 따라 윌셔와 옥스퍼드 길 코너에 오픈했다. 이후 ‘밸파레’라는 이름으로 리뉴얼되며 2층 천장 높은 공간과 입구의 기도(도어맨), ‘물갈이’ 시스템으로 최고의 클럽으로 등극했다.
2000년대 초반 선셋과 바인이 만나는 타워 20층에는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하는 한인이 운영하는 ‘클럽 360’이 있었다. 이곳은 미국 유명 연예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명소로, ‘클럽 란저리’를 포함해 LA 클럽계를 장악했던 이씨 형제가 운영했던 곳이다. 이들은 지금도 성업중인 타운 레스토랑 ‘황태자’를 일군 이들이다.
당시 타운 클럽 문화는 주류 신문에까지 등장했다. LA타임스는 2002년 7월25일자에 타운 클럽들을 소개하면서 웨이터가 여성손님을 끌어서 남성손님의 테이블에 앉히는 ‘부킹(Booking)’문화에 대해서 보도했다.
웨스턴길의 ‘카페 모네’는 카페에서 클럽으로 변신하며 ‘콤마 나이트클럽’이 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로젠 브루어리’로 전환된다.
한편, 알바라도 인근 파크 뷰 호텔 안에 잠깐 등장한 ‘XOXO’는 짧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남겼다. 업계를 평정하자, 기존 클럽 업주들이 단합해 시의원과 로비를 벌여 결국 문을 닫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시의원은 이후 다른 비위로 구속됐다. 이 클럽은 휘트니 휴스턴 주연의 영화 바디가드 속 아카데미 시상식장 촬영지로도 유명한 장소였다.
요즘 한인타운내 가장 핫하다는 ‘마마라이언’은 6가와 웨스턴 코너에 위치해 있다. 이름은 80년대 같은 자리에 있던 전설적인 클럽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과거 ‘식스애비뉴’, ‘줄리아나’, 그리고 ‘지직스’라는 이름으로 여러 클럽들이 영업했는데, 특히 지직스에서는 영화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한인 웨이트리스를 만나 결혼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탄생하기도 했다.
현재 타운에서 유일하게 공연형 클럽 분위기를 유지하는 ‘테라코타’는, 원래는 윌턴 시어터 뒤풀이 장소로 유명했던 ‘클럽 아틀라스’였다.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한인 운영의 레스토랑 ‘오퍼스’로 재오픈했고, 지금은 주말 중심의 베뉴형 클럽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운타운의 히스패닉 베뉴인 ‘마얀스’ 옆에 생긴 한인 운영 클럽 ‘벨라스코’는 한때 최고의 공연장이었으며, 클럽 ‘익스체인지 LA’와 함께 동양인들의 성지로 떠올랐다. 팬데믹 직전, 글로벌 공연 기업 ‘라이브 네이션’이 인수하며 위기를 피해갔지만, 정작 라이브 네이션은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고 사우디 국부펀드의 구제 없이는 파산 직전까지 갔던 아이러니를 남겼다.
1990년대 정점을 찍고 서서히 쇠퇴했던 타운의 클럽 문화가 30여 년 만에 조금씩 되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문 닫혀 있던 클럽 자리에 대한 문의가 여기저기서 오고 있다. 타운의 ‘흥’은 부활할 수 있을까.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