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개판이네” 군의관 비명…이재명·김문수 군면제 사연

2025-05-14

6·3 대선주자 탐구

대선주자 탐구- 두 ‘흙수저’의 군 면제 사연

순식간이었다. 육중한 프레스가 무서운 속도와 무게로 그의 손을 내리누를 듯 덮쳐 왔다. 급히 정신을 차린 소년공 이재명(이하 경칭 생략)이 손을 빼는 순간 프레스기가 그의 왼쪽 손목 바깥쪽을 강하게 때렸다.

그가 15세 되던 해인 1978년 대양실업에서 벌어진 일이다. 소 등가죽을 프레스기로 재단해 야구 글러브, 스키 장갑 등을 만들던 그 회사는 그의 다섯 번째 직장이었다.

이재명은 프레스반 ‘시다’였다. 소가죽 원단을 이리 저리 들고 날랐다. 원단은 무거웠고, 보수는 노동강도에 비해 형편없이 적었다.

‘시다’의 꿈은 ‘프레스공’이었다. 그는 원단을 나르는 틈틈이 어깨너머로 프레스공의 작업을 훔쳐봤다. 쉬는 시간에 기계가 비면 몰래 가서 조작해보기도 했다. 프레스공이 돼야 월급도 올라가고 대우도 좋아질 수 있어서다.

소년공의 열망과 노력에 행운이 겹쳤다. 공장에 유압 프레스기가 들어오면서 기존 숙련공들이 모두 그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재명은 졸지에 프레스공으로 승진해 구닥다리 기계식 프레스기 한 대를 맡게 됐다.

신이 나서 일하던 그에게 어느 날 바로 그 사고가 터졌다. 이재명은 프레스에 강타당한 손목을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워했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며칠 쉬면 나으려니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7년 뒤인 1985년, 징병검사장에서 방사선 사진을 보던 군의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재명은 그때 그가 내뱉은 한마디를 평생 잊지 못한다.

장면2

전데 누구십니까?

보안사에서 왔는데.

뜨끔했다.

더 뜨끔했다.

1971년 가을, 서울대에서 잘린 김문수(이하 경칭 생략)는 강제징집 대상이었다.

대구 국군통합병원에 자진 출석한 그에게 보안사 요원이 어울리지 않는 덕담을 했다.

너 몸 아픈 데 없지? 군대 잘 다녀와라.

주저주저하던 김문수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