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버페이스에 가까울 정도로 100일 동안 굉장히 속력을 냈어요. 제도적으로 막혀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는데 새 정부가 출범한 만큼 2차로 속력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의 탁구 영웅이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출신으로 각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올해 2월 28일 취임한 유승민(43) 대한체육회장. 그는 이달 7일이면 취임 100일을 맞는다. 3연임에 도전했던 ‘철옹성’ 이기흥 전 회장을 이겨 ‘이변’ ‘기적’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체육계 수장이 된 그다.
선수 시절 ‘발탁구’로 중국의 높은 벽을 넘었고 IOC 위원 선거운동 때도 세계 각국 선수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는 노력으로 불리한 판세를 뒤집었던 유 회장은 예나 지금이나 놀라울 만큼 부지런히 현장을 누빈다. 스위스에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을, 쿠웨이트에서 커스티 코번트리 차기 IOC 위원장을 만나는 등 취임 후 해외 출국만 여섯 번이고 시도 때도 없이 전국의 시도체육회 현장을 다닌다.
최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만난 유 회장은 “스포츠공정위원회 구성에 공력을 기울였고 다양한 스포츠 정책 수립과 시행에 체육회가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도 현장과 진천선수촌을 다니면서 지도자와 선수,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열심히 청취했다”며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모든 조직원이 초반 스퍼트에 동참해 첫 석 달 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는 느낌이다. 많은 부분을 조금씩 바꿔 놓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스포츠공정위는 전임 집행부 시절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가장 거세게 받았던 조직이다. ‘회장의 꼭두각시’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유 회장은 헌법재판관을 지낸 인사를 새 공정위원장으로 위촉했고 최근 일부 종목에서 미성년 선수를 상대로 한 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공정위를 통해 가중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했다. 지난달 전국소년체육대회(소년체전) 때는 학생선수 학부모 간담회를 열어 자녀 운동시키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눴다. 체육회장이 소년체전 현장에서 학부모를 만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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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회장은 “미성년 대상 폭력은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강력한 규정을 마련했다. 학부모 간담회에는 당일 아침 일찍 서울과 인천에서 기차 타고 김해로 오신 분도 있더라. ‘마음껏 운동하게 해달라’가 그분들의 목소리였다. 명확하게 (학생선수 관련) 정책과 비전을 확인한 자리였다”고 했다.
유 회장은 당선 뒤 ‘학교체육 살리기’와 ‘돈 버는 체육회 만들기’를 지상 과제로 꼽았다. 학부모 간담회를 통해 엘리트·생활체육의 근간인 학교체육 정상화 의지가 더 굳세졌다고. “최저학력제(주요 과목 성적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다음 학기 대회 출전 제한)라는 굴레 철폐, 합숙소 부활, 수업일수 강제 규정 폐지 이 세 가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추진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합숙 훈련 폐지는 ‘스포츠 미투’가 거셌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 나온 스포츠 인권 대책 중 하나다. 유 회장은 “우리나라는 합숙의 개념에 곡해가 좀 있다. 미국은 보딩스쿨(기숙학교)에 자부심이 있고 학비도 더 높지 않나. 합숙소를 하나의 교육의 장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의욕이 있다”고 했다.

회장 취임 전에는 잘 몰랐던 현실적인 벽도 느낀 100일이다. 체육회는 IOC 헌장을 따르는 독립 기관이지만 어디까지나 국내 공공기관이어서 제도적인 제약이 있다. 입찰을 통해야만 기업 후원을 받을 수 있고 선수촌 활용 마케팅도 제한된다. 국고보조금으로 건립된 시설이기 때문이다. 유 회장은 K스포츠 성지인 선수촌을 일반에 일부 개방해 수익 사업에 활용하고 국민과 호흡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후원하겠다는 기업은 많은데 제도적으로 풀지 못하니 수익 활동의 폭이 제한적이에요. 저희 자산도 마음대로 활용할 수가 없는 상황이고요. 그럼에도 기업 대표님들을 일일이 만나는 과정에서 후원 금액을 기존보다 늘리는 성과는 만들어 놓았어요. 제도적인 문제들을 새 정부에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개선을 추진하겠습니다.” 체육회의 올해 예산은 약 2800억 원. 유 회장은 “5500억은 돼야 한다. 국민 1명당 1만 원 이상은 돼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정관 개정을 통해 체육회 임원의 3연임 가능성도 없애버렸다. 스스로도 ‘체육대통령’이라는 권력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4년이라는 시간을 정말 소신껏 보낸다면 연임 못 해도 행복할 것”이란다. “임기 마칠 때 ‘유승민 벌써 4년 했어?’라는 얘기를 들으면 좋겠어요. ‘벌써’라는 말에는 좋은 의미가 있는 거니까. 재밌고 좋은 것은 뭐든 빨리 지나간다고 느끼잖아요. 근데 저 스스로는 ‘아직 100일밖에 안 됐나’ 싶어요. 3년은 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