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지할 곳은 시상대 꼭대기

2025-12-31

지난해 연말, 여고생 최가온(18)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금메달 후보로 급부상했다. 최가온은 12월 중국과 미국에서 열린 2025~2026 국제스키연맹 스노보드 월드컵 여자 하프파이프 2개 대회를 연달아 우승했다. 쇼트트랙을 제외한다면 2월 열리는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에 가장 근접한 종목은 스노보드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마음가짐이 성장했다. 떨림이 줄었다”고 했다.

14살이던 2023년 X게임에서 최연소 챔피언에 등극했던 그는 2024년 1월 스위스 락스에서 1080도를 회전하는 기술을 연습하다가 크게 다쳤다. 헬기로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허리가 골절돼 핀을 박아야 했다. 총 3차례 수술을 받았다.

최가온은 “아픈 것보다 대회를 못 뛰는 게 서러워 엉엉 울었다. 수술 후 엄마에게 ‘보드를 그만 타고 싶다’고 말했다”고 술회했다. 최가온은 “수술 후 외국은 병원비가 엄청 비싸다는 걸 알게 됐다. 국가대표 보험도 1000만원밖에 지원이 안 됐다”며 “보드를 다시 탈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대한스키협회 회장사인 롯데 신동빈 회장님이 치료비 전액 7000만원을 지원해주셨다. 너무 고마워서 감사 손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최가온은 재활 기간 동안 친구들과 놀면서 ‘내 삶에 스노보드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단다. 보드에 올라타니 불안감이 사라졌다. 지난해 1월 복귀 무대는 공교롭게도 그가 큰 부상을 당했던 스위스 락스였다. 그 곳에서 동메달을 땄다. 최가온은 “두려움도 있었지만, 내가 잘할 거라는 믿음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했다.

7세 때 김연아(36)를 보며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던 최가온은 스키장에 갔다가 보드에 반했다. 밤새 아빠를 졸라 5만원짜리 중고 보드를 갖게 됐다.

최가온은 올림픽 2연패(2018, 2022)를 달성한 이 종목 최강자인 재미교포 클로이 김(26)을 동경한다. 인연이 많다. 최가온은 “보드 선수가 된 후 얼마 후 뉴질랜드 훈련 중 다친 적이 있는데 클로이 언니가 응급실까지 따라와 통역을 해줬다”며 “이후 밥도 사주고 조언도 많이 해줬다. 내용은 비밀”이라며 웃었다.

코로나19로 훈련장을 찾기 어려울 때 길을 열어준 이도 클로이의 아버지였다. 최가온은 “클로이 언니의 아버지가 ‘클로이를 오랫동안 가르쳤던 벤 위스너 코치에 연락해보라’고 추천해줬다. 육아에 전념하던 벤 선생님이 제 영상을 보고 같이 해보자고 해서 짐을 싸서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했다.

최가온이 최근 2연속 우승한 월드컵에 클로이는 한 번은 불참했고, 한 번은 몸이 좋지 않아 결선을 포기했다. 그러나 올림픽 최대 경쟁자가 누구냐고 묻자 최가온은 “클로이 언니”라고 했다. 두 선수가 우승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하프파이프는 반 원통형 슬로프에서 공중 회전과 점프 등 연기를 심판들이 채점해 순위를 정하는 경기다. 최가온은 “같은 기술이라도 제일 중요한 건 높이다. 같은 한 바퀴를 돌아도 1m를 점프했는지, 2m 비상했는지에 따라 점수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했다.

최가온은 주행 반대 방향으로 공중에 떠올라 두 바퀴 반을 회전하는 ‘스위치 백나인’을 성공했고, 반 바퀴를 더 돌아 세 바퀴를 회전하는 ‘스위치 백텐’을 연마 중이다. 그는 “여자 중 스위치 백텐이 가능한 선수는 아예 없다. 거의 완성 단계지만, 파이프 컨디션이나 눈의 질·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직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가온은 7일 스위스로 건너가 월드컵에 참가한다.

최가온은 “7살 때부터 보드를 타면서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올림픽 시상대 제일 높은 곳에서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이름 ‘가온’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세상의 가운데이자 중심’이 되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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