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트렌드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공무원이 춤을 추고, 정부부처 대변인이 코스프레를 하고, 공공 조직이 밈을 만드는 시대입니다. 전북 군산시는 ‘햄부기’ 밈으로 280만 조회수를, 강원 춘천시는 콜드플레이 불륜 패러디로 448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죠. 또 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캐릭터로 분장해 ‘소다팝’ 챌린지에 나서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는 각각 군산 먹거리, 춘천의 푸드테크포럼, APEC 식량안보장관회의를 홍보하기 위한 시도였어요.

과거 보도자료 배포에 머물던 정책 홍보가 이제 숏폼·패러디 콘텐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사기업처럼 매출 압박이 없는 공공 조직들이 이토록 치열하게 홍보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차별화된 콘텐트를 만드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비크닉은 공공 홍보 트렌드를 이끄는 충주시와 코레일을 비롯해 최근 주목받는 군산시·춘천시·농림축산식품부, 그리고 전문성과 신뢰를 앞세우는 경찰청·한국관광공사·질병관리청까지, 8개 기관 뉴미디어 담당자들에게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 내막과 비결을 물었습니다.
충주맨이 연 트렌드…‘임플로이언서’ 전략 활용
가장 먼저 변화를 주도한 곳은 충주시였습니다. ‘충주맨’으로 불리는 김선태 충주시 뉴미디어팀장은 “지자체 유튜브는 아무도 안 본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해 B급 감성을 홍보 무기로 삼았습니다. 2020년 팬데믹 중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을 장려하는 ‘공무원 관짝춤’ 영상은 무려 1070만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죠. 이후 충주시 영상은 매번 유튜브 인기 동영상 목록에 오를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김 팀장은 “아무리 좋은 정책 정보도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B급 감성과 재미를 우선순위로 둔다”고 말했습니다.

코레일도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직원들이 직접 SNS팀 구성을 건의했고, 1호선 강하영 기관사가 등장한 ‘미스기관사’로 채널 이름을 알렸습니다. 초기에는 충주시처럼 직원의 캐릭터성을 앞세운 ‘임플로이언서(직원+인플루언서)’ 전략을 활용했다면, 현재는 ‘KTX에서 24시간 살아보기’, ‘기차로만 전국 일주’ 등 코레일만이 할 수 있는 기획으로 콘텐트 차별화를 시도합니다. 홍원우 코레일 SNS팀장은 “다른 기관에선 볼 수 없는 콘텐트 제작이 우리의 비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브랜딩에서 중요한 건 공급자가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 대중이 원하는 걸 기획하는 것”이라 덧붙였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홍보 담당자들의 노력은 퇴근 후에도 이어집니다. 김근형 춘천시 홍보담당관 주무관은 “속도와 재미가 홍보의 핵심이라 퇴근 후에도 다양한 콘텐트를 보면서 정책과 연결할 방법을 고민한다”고 했고, 강성윤 농식품부 디지털소통팀 사무관은 “온라인에서 재미있는 레퍼런스를 찾는 것이 일상”이라고 전했죠.
재미보다 신뢰 앞세우기도…기관 정체성 강화가 목표
콘텐트에 유머 코드만이 만능 비결은 아닙니다. 전문성과 신뢰가 중요한 기관들은 다른 접근법을 택합니다. 가령 경찰청은 음주운전 단속 영상(조회수 173만회)이나 미아 찾기 영상(조회수 253만회) 등으로 ‘국민 안전 책임 기관’이라는 역할을 강조합니다. 진현식 경찰청 디지털소통계장은 “경찰이 춤을 추거나 과도한 연출을 하면 부정적 반응을 받을 수 있어 단순 재미만 노리는 건 경계한다”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소재로 삼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경찰청 콘텐트 인기 비결”이라고 설명했죠.

질병관리청은 전문적인 의·과학 정보를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데 집중합니다. 온열질환 예방법이나 바이러스, 진드기 주의법 등을 실험과 예능형 인터뷰로 보여주죠.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APT.)’, 오징어게임 등을 패러디해 젊은 세대에 다가가면서도, 지역사회에서는 현수막, 포스터 등 오프라인 매체를 활용해 정책 대상별 맞춤 홍보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또 요즘같은 숏폼 시대에도 한국관광공사는 20분 안팎의 비교적 긴 영상으로 국내 구석구석을 소개합니다. 최윤아 한국관광공사 홍보팀 주임은 “챌린지나 밈 활용은 초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론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기관 정체성이 드러나는 일관된 기획이 중요하다”고 말했죠.
언론 한계로 직접 소통…젊은 세대가 바꾼 조직 문화

공공 조직들이 홍보 경쟁에 뛰어든 배경에는 달라진 미디어 환경이 큰 몫을 합니다. 김 팀장은 “SNS와 유튜브 등 뉴미디어가 주요 채널로 부상하면서 대중의 정보 소비 방식이 달라졌고, 언론을 활용한 전통적인 의미의 홍보는 확산의 한계가 있다”고 짚었죠. 박종민 경희대 교수(미디어학) 역시 “과거엔 시민이 정부 정책에 ‘순응’했다면, 이제는 뉴미디어를 통해 상호 작용하며 정책 합의가 이뤄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조직 문화 변화도 중요한 배경입니다. MZ 세대 공무원들의 등장이 공공 조직 내 탈권위적·소통 중심 문화를 확산시켰죠. 박 교수는 “공공 홍보 담당자들의 자발성이 눈에 띄는데, 젊은 세대가 정부 조직 안에서 변화를 이끄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실제 홍보 담당자들은 공공 콘텐트 성공 비결로 ‘결재 간소화와 자율성’을 꼽았습니다. 황현옥 군산시 미디어홍보 주무관은 “요즘은 콘텐트를 다 만든 뒤 보고한다”고 했고, 강 사무관도 “보고 절차 간소화로 언제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공유한다”고 전했죠.

본질은 정책 메시지…조직 브랜딩 효과도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원하는 목표는 동일합니다. 바로 정책·사업 홍보, 기관 브랜딩을 통한 신뢰 구축이죠. 황 주무관은 “재미는 접근성을 높이는 도구일 뿐, 본질은 정책 메시지 전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홍보 콘텐트는 실제 정책 성과로도 이어집니다. 코레일은 임산부 승차권 할인 홍보 영상 업로드 이후 지난해 3분기 서비스 이용 건수가 3만5000건에서 4분기 약 11만5000건으로 233% 늘었고, 청각장애인이 운영하는 기차역 네일케어 서비스 홍보 영상(약 430만 조회수)으로 안양역 내 서비스 이용률을 119% 높였다고 전했죠.
공공 홍보는 도시·기관의 이미지 형성에도 효과적입니다. 일례로 ‘충주시 콘텐트의 도시 브랜딩 효과’에 대해 연구한 정주용 국립한국교통대 교수(행정정보융합학)의 논문에 따르면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흥미로운 PR 콘텐트를 경험하면 지역에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고, 이것이 지방정부 신뢰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처럼 공공의 홍보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요즘, 주목할 점은 이런 변화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국민에게 다가가려 하고, 국민 역시 정책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선순환 속에 ‘브랜딩하는 공공’은 어디까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