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엽이 거의 다 진 늦가을 무렵, 변한 것은 단지 계절의 온기만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마음의 온기마저 식어간다. 이유 없이 찾아오는 쓸쓸함이나 무기력감,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기도 한다. 평소에는 잘하던 일들이 이유 없이 귀찮아지고, 특별히 힘든 일도 없는데 쉽게 지친다. 이맘때쯤 느끼는 이런 공허하고 우울한 마음을 사람들은 “가을을 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우리 몸에서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물질의 분비가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계절성 정동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SAD) 현상이다.
계절성 정동장애는 우울증의 한 형태다. 일반적인 우울증처럼 마음이 가라앉고, 의욕이 떨어지며, 흥미를 잃고, 집중도 잘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질환의 중요한 특징은 계절의 변화와 맞물려 반복된다는 점이다. 대체로 추운 계절에는 우울증이 심화하고, 날이 풀리면 점차 증상이 완화된다.
겨울이 길고 일조량이 적은 북유럽이나 캐나다 지역에서는 10명 중 1명이 계절성 정동장애를 경험한다. 하지만 일조량이 많은 열대 지방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증상이 드물게 나타난다. 이는 계절성 정동장애가 단순한 감정의 기복이 아니라 환경변화에 따라 호르몬과 뇌가 반응해 나타나는 우리 몸의 생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뇌에서 합성되는 핵심 신경전달물질이다. 우리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 식욕 그리고 수면 리듬을 조율한다. 흔히 세로토닌을 ‘행복 호르몬’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태양광은 우리 몸에서 세로토닌을 만드는 과정을 활성화한다. 빛이 눈에 들어오면 망막(retina)에서 감지되고, 이것이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이때 우리 몸은 세로토닌 합성을 촉진한다. 늦가을이나 겨울처럼 일조량이 줄어드는 계절이 되면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든다. 이로 인해 의욕이 떨어지고 기분이 가라앉는 이른바 ‘가을 타는 감정’이 생긴다.
계절성 정동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아무리 잠을 자도 개운치 않다”, “모든 일이 귀찮다”, “별일 아닌데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말한다. 이는 세로토닌 감소로 인해 뇌의 감정 조절 회로가 흔들리며 생기는 대표적인 계절성 정동장애 증상이다.
세로토닌이 낮 동안 기분을 밝게 유지하는 호르몬이라면, 멜라토닌(melatonin)은 뇌의 송과선에서 분비되는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이다. 해가 지면 우리 몸은 멜라토닌 생성을 증가시켜 자연스럽게 수면을 유도한다. 문제는 밤이 길어지는 시기가 되면, 우리 몸에 멜라토닌 분비가 과도해진다. 그 결과, 해가 현저히 짧아지는 늦가을이나 겨울철에는 낮 동안에도 졸음과 무기력이 지속된다.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들이 아침 기상에 어려움을 겪고, 온종일 피곤함을 느끼는 것도 멜라토닌 과다와 관련이 깊다. 즉 세로토닌 부족으로 기분은 가라앉고 멜라토닌 과잉으로 몸은 늘어진다. 이 이중의 생리적 변화가 계절성 우울증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세로토닌 부족과 멜라토닌 과잉이 동시에 일어나면 우리의 생활 전반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대표적인 것이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이다. 달콤한 초콜릿이나 따뜻한 빵이 당기는 것은 단순한 입맛 문제가 아니다. 뇌가 부족해진 세로토닌을 보충하기 위해 당 섭취를 유도하는 ‘보상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체중 증가, 피로 심화, 대사 불균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또한 계절성 정동장애 환자들은 사회적 활동에도 소극적으로 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계절성 정동장애가 학업 성취도와 직업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임을 피하고 혼자 있으려 하며, 집중력이 떨어져 학업이나 업무에도 차질을 빚는다. 결국 계절성 정동장애는 단순한 기분 장애가 아니라 삶의 질과 사회적 활동까지 저해할 수 있는 질환이다.
다행히 계절성 정동장애는 효과적인 관리 방법이 알려져 있다. 일상적인 작은 실천을 통해 그 증상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치료법 중 하나는 ‘광치료(light therapy)’다. 이는 아침 시간에 특수 제작된 밝은 빛을 일정 시간 동안 쬐는 치료 방식이다. 자연광을 모방한 이 빛이 뇌의 생체시계를 조율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고, 동시에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임상 연구에 의하면 이 치료를 꾸준히 할 경우 몇 주 이내에 우울감과 무기력 증상이 뚜렷하게 호전된다.

이와 함께 가벼운 운동과 야외 활동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유산소 운동이나 햇빛이 잘 드는 낮 시간대의 산책은 뇌에서 세로토닌 생성을 자극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야외에서 운동하는 습관은 계절성 정동장애 증상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또한 영양 관리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세로토닌은 트립토판(tryptophan)이라는 아미노산을 원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달걀, 두부, 견과류, 연어 등 트립토판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면 세로토닌 합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빛, 운동, 식단 같은 일상적인 요소를 조율함으로써 계절성 정동장애는 충분히 극복 가능한 질환이며, 자연과 리듬을 맞추는 삶이 회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생활 습관 변화와 식단 관리로도 계절성 정동장애 증상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을 때는 약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약물이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SRI)’다. 이 약물은 뇌 신경세포 말단에서 세로토닌이 다시 흡수되는 것을 막아 신경세포 간에 세로토닌이 더 오래 머물도록 돕는다. 그 결과 기분이 안정되고 우울감이 완화된다. 물론 약물치료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해 진행해야 하며, 개인의 상태에 따라 효과와 필요성이 다르다. 그러나 증상이 심각하다면 선택적인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계절성 정동장애는 자연의 변화가 곧 우리의 뇌와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햇빛이 줄어들면 세로토닌은 감소하고, 멜라토닌은 늘어난다. 이 작은 생리적 변화가 우리의 기분, 행동, 생활 전반을 바꾼다.
그러나 이를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한다면 계절의 어둠 속에서도 다시 빛을 찾을 수 있다. 계절은 변하지만, 우리의 뇌와 마음은 과학적 이해를 통해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청년 미디어] 진단명: 양상추 버터 토스트](https://www.usjournal.kr/news/data/20251120/p1065621476720548_181_thum.jpg)


![[마켓트렌드] 낭만 가득한 겨울 캠핑의 맛… '먹핑족' 위한 간편 조리 필수템](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5/11/18/news-p.v1.20251118.e3fde82f987749a0a67ca6a62c3c5932_P2.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