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닉 크라울리 컨선월드와이드 대표 인터뷰

기아 종식을 향한 인류의 ‘야심찬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 지난 2015년 열린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들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하나로 제로 헝거(Zero Hunger)를 채택하고 2030년까지 지구상에서 기아(굶주림)를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기한 내 목표 달성은 불가능해 보인다. 2000년 이후 개선되던 기아 상황이 2016년을 기점으로 정체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컨선월드와이드는 기아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기 위해 설립된 국제 인도주의 단체로 2006년부터 매년 ‘세계기아리포트(GHR)’를 발간하고 있다. 올해 세계기아지수는 18.3점으로 ‘보통’ 단계를 기록했지만 2016년 19.0점에 비해서는 크게 나아진 게 없다. 기아 종식의 꿈은 이대로 멀어지는 걸까. 지난달 서울 명동에서 열린 ‘2025 세계기아리포트’ 행사에서 도미닉 크라울리(Dominic Crowley) 컨선월드와이드 대표를 인터뷰했다.
해결할 의지
세계기아리포트를 발간한 지 올해로 20년째다. 컨선월드와이드가 기아 문제에 집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컨선은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단체다. 아일랜드는 과거 대기근(1845~1852년)을 겪으며 인구의 25%를 잃는 아픈 경험을 했다. 그 영향으로 기아 문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깊게 형성돼 있다. 기아에 집중하는 이유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세계기아리포트를 통해 전 세계 기아 상황을 매년 추적하고, 극심한 기아에 놓인 소말리아·남수단·아이티·방글라데시 등지의 사람들을 돕는다.”
지난 20년간 세계기아지수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눈에 띄는 성과가 있었다. 2000년 세계기아지수는 29.0점으로 ‘심각’ 단계였지만 2016년 ‘보통’ 단계로 개선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개선되는 속도가 너무 느려졌다. 애초 유엔이 제로 헝거 달성 시기를 2030년으로 잡았는데, 지금 속도면 2137년이 돼야 기아 수준이 ‘낮음(9.9 이하)’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올해 기아 상황은 어떤가.
“세계 인구의 8%가 식량 불안과 기아를 겪고 있다. 기아 수준이 ‘심각’ 또는 ‘위험’ 단계로 분류된 나라가 42개국이나 된다. 유엔은 가자지구와 수단을 ‘기근 지역’로 공식 선포했다. 동시에 두 곳이 기근 지역으로 선포된 건 유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제원조 시스템의 실패를 상징하는 결과다.”
기아 종식을 가로막는 장벽은 무엇인가.
“기후위기와 분쟁이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전 세계 기아의 75%가 분쟁과 연관돼 있을 정도로 분쟁 지역의 식량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공여국들이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줄줄이 삭감한 것도 원인이다. 올해 인도주의 재원을 보면, 유엔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금액의 28% 정도만 충당됐다. 쉽게 설명해서 네 명의 아이가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면, 실제로는 한 명을 돕는 재원밖에 없다는 뜻이다. 기아 종식을 다짐했지만 사실은 ‘해결할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기아는 예방 가능하다
‘의지 부족’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의지 부족이라는 개념을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야 한다. 기아를 없애야 한다는 도덕적인 의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의지, 분쟁을 예방하거나 중단하려는 의지, 그리고 ODA 비용을 충분한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지원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정치적 결단이 시급하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기근은 하루아침에 발생하지 않는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만약 가자지구나 수단에 적절한 지원이나 원조가 도달할 수 있었다면 기근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기아는 정치적 무관심이 불러온 방치된 위기다.”
어떤 해법이 필요할까.
“60년 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에게는 이미 기아를 해결할 능력과 역량이 있다. 필요한 건 의지뿐이다.’ 이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 기아 감소가 정체되고 있는 이유는 의지와 행동이 뒤따르지 않아서다.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다짐’이다. 기아 종식을 향한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
컨선월드와이드 한국사무소가 생긴 지 10주년이 됐다. 한국 기부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코로나19 당시의 논의를 떠올려 보라. ‘No one is safe until everyone is safe.’ 모두가 안전해질 때까지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 말은 기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일랜드처럼 한국도 기아와 분쟁을 겪은 나라다. 굶주림과 영양실조가 어린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도움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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