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의 아시아안보대화(샹그릴라대화) 연설에는 한국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동맹들의 국방비 지출을 높이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구상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새 국방비 목표인 ‘GDP 5%’를 언급하며 한국·일본 등에 국방예산 증액 등을 에둘러 압박했고, 미·중 균형외교에 대해서는 ‘경고 발언’을 했다. 국방비 및 방위비의 증액, 중국고립 동참 등의 사안에서 차기 정부를 향한 미국이 압박이 날로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헤그세스 장관은 31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 대화(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중국은 아시아 패권국이 되려고 한다”며 “이 지역을 지배하고 통제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이 무력을 사용해 아시아 현재 상황을 강제로 바꾸려 한다”며 중국에 날을 세웠다.
헤그세스 장관은 그러면서 아시아 동맹국에 국방력 강화를 요구했다. 그는 “유럽이 점차 안보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지는 것처럼 아시아 동맹국들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스스로 신속히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비 증액 역시 에둘러 압박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의 새 국방비 목표인 ‘국내총생산(GDP)의 5%’를 거론했다.
그는 “독일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고 소개한 뒤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훨씬 더 강력한 (중국발) 위협에 직면하고서도 국방비 지출을 덜 하는 상황에서 유럽이 그렇게(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 증액)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그러면서 “유럽이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은 자국 방어를 신속하게 업그레이드함으로써 뒤따를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이나 일본 등을 향해 직접적으로 ‘국방비 증액’을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NATO의 5% 가이드라인을 적극 언급함으로써, 최소한 이에 준하는 수준까지 높여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현재 한국의 국방예산은 GDP의 2.5%안팎인데, 차기 정부에게 미국 정부가 2배 이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생긴 것이다.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지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및 균형외교에 대해서도 경고성 발언도 나왔다. “많은 국가가 중국과의 경제 협력, 미국과의 방위 협력을 동시에 하려는 유혹을 받는 것을 안다”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은 그들(중국)의 해로운 영향력을 심화시킬 뿐이며, 긴장된 시기에 우리의 국방 관련 결정의 공간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수출 비중이 1·2위가 미국과 중국인 한국은 양국을 모두 살피는 외교·통상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사실상 ‘양자 택일’을 요구한 것이다. 게다가 미중 무역갈등까지 고조되고 있어 대중국 고립 동참 압박은 날로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헤그세스 장관은 또 중국 견제를 위한 인태지역 방위력 강화의 구체적 조치를 열거하면서 인태 지역의 미사일 방어 개선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지역 통합 방공 및 미사일 방어 구조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MD)에 참여하는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이날 헤그세스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인태 동맹국들의 국방비 증액 필요성을 말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한차례 거론하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