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카와 아야의 시사일본어] 타이파

2025-11-07

요즘 일본에선 ‘타이파(タイパ)’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타임 퍼포먼스’의 줄임말이다. 시간당 생산성을 의미하는데, 효율적인 시간 사용을 강조한 말이다. 이 단어는 사전으로 유명한 출판사인 산세이도(三省堂)가 선정해 발표하는 ‘올해 신어(新語) 2022’의 대상으로 뽑혀 이미 사전에 수록돼 있다. 여기엔 ‘들인 시간 대비 효과(만족도)’ ‘되도록 시간을 들이지 않고 많은 성과를 얻고 싶은 발상이 깔려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일본 사회에는 아직 한국에 비해 아날로그 문화가 많이 남아 있고,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변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 점점 효율성을 강조하는 문화가 발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미 사용하고 있는 ‘코스파’에 더해 타이파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코스파는 ‘코스트 퍼포먼스’의 준말로 한국의 ‘가성비’와 유사한 의미다.

타이파 현상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필자와 같은 영화 팬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즐기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를 답답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 등을 빠른 속도로 돌려서 시청한다.

타이파 현상은 결혼 문화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2022년 결혼한 부부의 만남의 계기 중 가장 많은 것이 매칭앱이었다. 매칭앱은 온라인에서 만남을 주선하는 서비스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사람을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어 이용자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결혼상담소에 등록하는 젊은이가 급증하고 있다. 매칭앱을 통한 만남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만나기 전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채팅에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가의 선택을 통해 시간을 절약하겠다는 사람이 증가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넷플릭스 등 OTT가 보급돼 방대한 콘텐트를 접하게 된 것도 타이파가 생겨난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일본 영화 역사에서 눈에 띄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닝 타임이 3시간에 달하는 영화 ‘국보’가 개봉 110일 만에 흥행 수익 150억 엔(약 1400억원)을 넘어서 조만간 실사 영화 중 역대 1위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소재가 진부할 수 있는 전통 예능 가부키인데도, 관객 수가 1066만 명을 넘어섰다. 일본은 애니메이션 강국이라서 실사 영화가 이처럼 빅히트를 한 것은 22년 만이다. 타이파를 추구하다가 지쳐서 정반대의 문화가 그리워진 것은 아닐까.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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