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연의 MMCA소장품이야기⑬> 보테로 ‘춤추는 사람들’ [아트씽]

2025-11-15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는 이른바 뚱뚱한 형태의 인물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밝은 색채와 통통한 형상이 주는 유머러스한 분위기는 작가가 지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에서 태어났다. 콜롬비아 제2위의 도시 메데진은 안데스 산맥의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오늘날은 콜롬비아 커피 산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20세기 중반에는 마약 카르텔의 중심지로 악명이 높았다.

보테로는 19세에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1952년 처음 콜롬비아를 떠나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에서 본 서양 고전미술 거장들의 작품과 이탈리아 여행 중 만난 프레스코 벽화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작가가 처음부터 부푼 형태를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당시 미술학도들은 자신만의 작품 스타일을 구축하려 노력했던 반면, 나에게는 테크닉을 익히는 것이 일 순위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1957년 보테로는 ‘만돌린이 있는 정물’을 그릴 때 비로소 과장되게 부풀려진 형태의 특징을 처음 터득했고, 점점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게 됐다. 이러한 특징은 당시 잭슨 폴록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의 경향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풍만한 양감을 통해 인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감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즉흥성에 기초한 추상표현주의의 양식적 특징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채 붓질의 우연한 효과, 물감의 흘러내리는 효과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반면 보테로의 작품은 명암과 원근법을 단순화하고 현란한 원색을 사용해 대상의 확고한 형태감과 양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보테로는 자신의 화풍에 대해 “나는 뚱뚱한 사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양감을 그릴 뿐”이라고 설명했다.

보테로는 자신만의 조형방식에 확신을 가졌고 세간의 인정을 받으면서 점차 과장된 크기로 부풀린 인물, 자연풍경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오브제들을 병치해 나갔다. 동시에 콜롬비아의 토속적 요소를 기반으로 벨라스케스, 고야, 라파엘로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차용했다. 이러한 고전미술의 패러디는 보테로 고유의 스타일로 자리잡았는데 비정상적인 형태감과 화려한 색채를 이용해 인간의 천태만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특히 자신의 출신지인 중남미 지역의 사회, 정치, 종교적인 문제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사실주의적 경향도 지녔다. 보테로가 주목받았던 배경으로 20세기 중반 라틴 아메리카 미술에 대한 유럽과 미국 미술계의 관심도 유효했다. 그간 변방으로 알려진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미술과 음악이 지속적으로 소개되면서 많은 남미 예술가들이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 받았고 보테로 역시 1960년대 이후 크게 부각된 작가였다.

작품 ‘춤추는 사람들’에서는 색색의 조명 아래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가 음악에 취해 춤을 추고 있다.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여자의 손톱과 노출 있는 원피스, 옷 뒤쪽에 달린 분홍색 리본을 통해 그녀가 한껏 치장해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배경 커튼의 장미 문양과 바닥을 채우는 담배꽁초, 색색의 불빛 등은 로맨틱한 장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요소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병과 버려진 담배꽁초는 두 남녀가 함께한 시간이 꽤 오래되었음을 은유하는 힌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주제인 ‘춤’은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문화 요소다. 라틴 댄스는 유럽의 춤 문화와 멕시코 이남의 부족한 노동력을 충족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강제 이주된 흑인 노예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외래적 요소는 남미 인디언들의 문화와 융합돼 오늘날의 라틴 댄스를 탄생하게 했다. 라틴 댄스는 1910~50년대 미국 영화 등을 통해 라틴 음악과 함께 세계적으로 소개되기에 이르렀고 라틴 댄스와 음악은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잡게 됐다. 보테로는 이러한 라틴 댄스를 소재로 다수의 작품을 그려왔다. 수많은 작품 속에서 그는 자신의 문화적인 뿌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그 세계로 우리의 관심을 유도했다. 남미 문화는 유럽의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풍토, 사회 시스템, 역사, 인종 등이 전혀 다르므로 특유의 감성을 발현해 왔다. 보테로는 거기에 작가의 경험, 기억, 관찰, 나아가 회고적 성격이 담긴 화면을 더했는데 작가가 관찰자이자 참여자로서 화면에 보이지 않을 뿐 화면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일상의 삶과 보통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인 계기는 어린 시절이던 1940년대 콜롬비아 내전의 경험, 1950년대 수도 보고타에서 만났던 전위적인 예술가들과의 교류에 기인한다. 그 중에서도 보테로는 카페 아우토마티카(Café Automática)에서 만났던 시인·소설가·저널리스트이자 정치인이었던 호르헤 살라메아 보르다(Jorge Zalamea Borda)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콜롬비아의 독재정권 치하에서 적극적으로 투쟁했던 지식인인 그는 시집 ‘계단들의 꿈(El sueño de la escalinatas)’에서 보고타의 서민적 풍경과 사회적 불평등을 시각적이고 상징적인 언어로 그려내며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특히 언론인으로서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불의에 저항하고 사회변화를 추구한 행동하는 지식인들과의 영향관계 속에서 보테로는 콜롬비아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작품 속에 담고자 했으며 그들의 삶을 보다 나은 쪽으로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1984년 이후 2000년까지 보고타와 메데진의 미술관에 자신의 회화와 조각작품 수백점을 지속적으로 기증했다. 대가들의 원작을 흑백사진으로 봤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이 소장했던 피카소, 모네, 드가, 마티스, 달리, 라우셴버그 등 주요 미술작품 100여점 또한 기증했다.

필자가 만난 보테로는 흥이 넘치는 예술가였다. 미술에는 음악이 반드시 함께 해야한다고 하고서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시의 개막식 순서에 라틴 음악 연주가 포함된 것을 매우 반겼다. 내한 당시 점심과 저녁에는 비싸지 않은 와인이더라도 반주로서 꼭 와인을 주문하면서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음악에 매우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특히 말년에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지역에서 조각작업을 많이 제작했는데 회화에서 보여준 양감을 입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장인들을 만나 행복하다면서 한국에서 대형조각전시도 개최하고 싶다는 희망을 얘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20세기 한국의 복잡다난한 역사를 잘 알고 있다면서 이라크 전쟁 중 가해진 인권침해 뉴스를 보고 그린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시리즈를 한국에서 꼭 전시하고 싶다고도 했다. 아쉽게도 그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춤추는 사람들’을 통해서 작품 속의 유머러스한 스타일 이면에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담긴 보테로의 예술관이 전달되기를 희망한다.

보테로의 작품 ‘춤추는 사람들’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한창인 ‘MMCA 해외명작-수련과 샹들리에’ 전시에서 볼 수 있다.

★페르난도 보테로 : 1932년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태어났으며 4세때 부친이 사망해 어린 시절 투우사 양성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1948년부터 화가로 활동을 시작해 초기에는 멕시코벽화운동과 피카소 등 유럽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 1952년 보고타로 옮겨 콜롬비아 살롱에서 2등을 수상했고 상금으로 스페인으로 가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처음 실제로 마주하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1957년 미국 워싱턴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1960년 뉴욕으로 이주했고 이 시기부터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61년 뉴욕 MoMA가 그의 작품을 소장했다.1973년 파리로 거점을 옮기고 조각작업을 병행했다. 1980년대부터 ‘모나리자’ 등 고전회화의 패러디 시리즈를 선보였고 1984년부터 투우 주제 회화 연작을 제작했다. 2000년대 이라크 전쟁 중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인권 침해를 다룬 시리즈와 콜롬비아 내전의 비극을 다룬 작품들을 제작했다. 2023년 타계했다.

▶필자 류지연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운영부장이다.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입사해 전시기획, 미술관교육, 소장품연구, 레지던시, 서울관·청주관 건립TF 등 미술관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29년째 미술관을 지키고 있다.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영국 에식스대학교(Essex University)에서 미술관학(Gallery Studies)을 공부했으며, 서울대에서 미술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겸임교수(2022~2023)를 비롯해 여러 미술관과 기관의 운영자문위원, 소장품 수집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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