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회의 중 메모 작성 적발
러시아 스파이 의혹 관련 수사 중

유럽연합(EU)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참석한 정상회의에서 보안 규정을 위반한 통역사를 해고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EU 내 스파이 활동 경계심이 한층 더 커지고 있다.
9일 현지시간 폴리티코유럽판에 따르면 EU집행위원회는 최근 성명에서 “(통역사가) 민감한 회의에서 메모를 작성한 사실이 적발돼 조처를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12월 19일 열린 유럽이사회 회의에서 발생했다. 이날 회의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참석했으며, 국방과 안보 등 기밀 사안이 논의된 민감한 자리였다.
EU는 관련 규정에 따라 민감한 회의에서는 메모 작성이 엄격히 금지된다. 이는 스파이 활동을 포함해 러시아 등 적대 세력으로 정보가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집행위는 “문제의 메모는 즉시 압수했다”며 “사건을 신중히 검토한 끝에 재발 방지를 위한 단호한 조처를 했다”고 설명했다.
EU는 해당 통역사와 계약을 해지했다. 이 통역사는 프랑스-우크라이나 이중 국적의 프리랜서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EU 정상 간 소통을 지원하기 위해 고용된 인물로 알려졌다. 사건은 현재 벨기에 사법 당국이 수사 중이다. 당국은 이번 사건이 러시아를 위한 스파이 활동과 연관돼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EU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스파이 활동의 중심지로 꼽힌다. EU 집행위는 지난해 내부 공지문을 통해 “브뤼셀 내 외국 정보요원의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한 바 있다. 당시 공지문에는 “수백 명의 정보요원이 우리 기관을 노리고 있다”는 경고도 담겼다. 실제 지난해에는 라트비아 출신의 타티야나 즈다노카 전 유럽의회 의원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과 연계된 혐의로 제재를 받았다.
르몽드는 이번 사건을 두고 “유럽 내 안보와 외교의 불투명한 이면이 다시 드러난 사례”라며 “러시아 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EU 내 보안 기강 강화 움직임이 더 거세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