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은실 작가가 아라리오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을 통해 '출산'의 의미를 조명한다.
16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는 이은실 작가의 개인전 '파고' 언론공개회가 열렸다. 이는 작가가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최하는 첫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 '파고'는 이은실 작가가 오래도록 숙고해 온 '출산'이라는 주제를 최초로 전면에 드러내는 자리다. 개인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변곡점을 파도의 높이 '파고'에 비유한 신작 10점을 선보인다.

이날 이은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출산도 누구에게나 연계가 되어 있고, 인접해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의 삶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인데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을 환상적인 일로 축하를 한다. 저는 이걸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경험하고 본 것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은 1층에 설치된 대형 회화 '에피듀럴 모먼트'로 관람객을 맞는다. 수묵 채색으로 묘사된 화면에는 두터운 안개에 덮인 부감 시점의 산맥 위로 거대한 뱀, 또는 용의 모습이 중첩된 장면이 담겼다. 네 개의 화폭을 휘감은 동물의 금빛 비늘 사이로 곳곳에 해체된 뼈의 형상이 드러나 있다.
이 작가는 "출산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무통주사다. 엄청난 강한 진통제를 맞고 있는 상황에 대해 표현한 그림이 '에피듀럴 모먼트'이다. 출산을 하면 온 몸의 뼈가 벌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를 화면에 녹여냈다. 진통으로 인해 몸이 전쟁터처럼 파편화되는데, 진통제가 주입됨으로써 아픔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고 마치 환상 속에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을 그려보고자 했다"고 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출산 과정에서 겪은 폭발적인 응집과 분열의 힘을 캔버스 안에 직설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그려냈다. 출산 전 진통부터 출산, 그리고 이후의 과정을 모두 담아냈다.
출산의 진통이 무통주사로 인해 희미해지는 모습을 '에피듀럴 모먼트'로 그려냈다면, '전운'은 푸른 안료를 수없이 중첩해 깊은 바다의 빛깔을 통해 진통의 고통을 심층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가는 "물리적으로 이 그림은 진통 1기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어지는 '인생의 소용돌이'는 극한의 진통 상태로, 아이가 나오기 직전을 소용돌이로 표현했다. 이와 함께 다른 챕터로 넘어가는 인생이 소용돌이로 빠져들어가는 모습을 함께 담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은실 작가는 출산의 순간에 분만의 주체에게 가해지는 신체적 충격을 근접화면으로 보여준다. 출산에 의한 파열의 흔적은 일시적으로 발생했다 사라지거나, 또는 타인에게 드러내어 보이지 않은 부위에 은폐된다. 작가는 이러한 상흔을 캔버스에 그려냈다.

'고군분투' 작품은 물리적 압력에 의해 눈의 실핏줄이 터진 광경을 부분적으로 묘사했고, '절개'와 '흔적'은 각각 복부 절개 부위의 수술 자국과 튼살의 흔적이 담겼다.
작가는 "원래 제 작업 스타일 자체가 이번 전시처럼 번지고, 물들어가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군분투'의 경우 피가 터지는 상황과 강한 극한의 상황을 표현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표현이 된 부분"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이 출산 이전, 출산 중에서 겪은 과정들이라면 '넘치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태도'는 출산 이후를 그렸다. 산후 유선염을 소재로 삼아 모성의 의지와 따르지 않는 신체 사이의 간극과 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은실 작가는 14년 전, 첫 출산을 경험했다. 그리고 5년 뒤에는 둘째를 출산했다. 지금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셈이다.
그는 "출산을 주제로 한 전시를 오래 구상을 했는데, 아이를 낳고 이 주제를 떠올리니 마치 트라우마처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출산 직후 이 고통을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서 그래서 아이들을 키우고 차분히 다시 생각하고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 때가 됐다고 느꼈다"며 이유를 밝혔다.
아라리오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파고'의 그림은 출산이라는 사적이자 보편적인 순간이 지닌 강렬한 감각과 기억을 담아냈다.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고 바라봄으로써 다른 사람의 고통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며, 보는 이들을 겁주거나 경험을 뽐내기 위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출산 경험의 유무 차원이 아닌 인간이 겪는 고통에 대한 공감의 가능과 불가능의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한 걸음 우회해서 작품을 감상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은실 작가의 '파고'는 오는 17일부터 2026년 1월 31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진행된다.
alice0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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