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북한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2025-05-20

북한 비핵화를 위해 제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때였다. 한 특강에서 필자는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을 협상으로 이끄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며 평화적이라고 주장했다. 강의가 끝나자 어떤 교수가 질문했다. “이전에는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 시장화를 돕고 남북 경제통합을 하자던 김 교수가 갑자기 경제를 제재하자니 웬 말인가.” 이렇게 응답했다. “핵을 갖게 된 북한은 핵이 없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은 응급 상황이다. 팔 하나가 절단되어 바로 수술해야 하는데 두 팔이 왜 제자리에 붙어 있지 않냐며 한탄하는 담론은 너무 여유롭다.”

지정학 시대, 트럼프의 시간인데

북한 관련 공약은 과거 정책 답습

미국 이익, 한국 안보가 교차하는

미·북 광물협정 등 신사고 필요

2025년은 그때와도 다르다. 지금은 지정학의 시대요, 트럼프의 시간이다. 세상은 변했는데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은 여유롭다. 이재명 후보의 제안은 문재인 정부 때와 유사하고, 김문수 후보의 공약은 윤석열 정부 후기 정책의 강화된 버전 같다. 북한은 핵 군사력과 지정학이라는 2차원 전략을 구사하는 반면, 양당은 과거 정책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 거래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두 후보의 공약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한국의 안보에 기여하고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트럼프 연동형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미·북 간 광물협정이 유력한 방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광물협정을 체결하고, 그린란드 영토를 차지하려는 중요한 이유는 중국이 수출하는 희토류가 미·중 패권 경쟁에 임하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이다. 매장량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희토류에 접근할 수 있다면 미국의 공급망 취약성은 크게 줄어든다. 미국이 한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와 맺은 광물협정과 유사한 협정을 북한과 맺는다면 북한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협정처럼 광물의 소유권은 북한이 갖되 미국과 한국은 우크라이나 광물 개발에 우호적인 조건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대부분 수익은 북한의 경제성장을 위해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광물협정은 한국에 큰 편익을 준다. 미국 기업이 북한 지역에 투자하려면 미·북 관계 정상화와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이 우선 논의돼야 한다. 통상적인 경로를 따르면 이 단계까지 가는 데 오랜 기간이 소요되지만, 이 비상한 시대에는 광물 개발이라는 사업을 통해 그 경로를 한 번에 뛰어넘을 가능성이 생긴다. 또 북한 지역에 미국 기업이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의 핵 사용을 억지하는 힘이 있다. 핵을 사용하면 미·북 관계가 파탄이 날 것이고 북한이 입게 될 경제적 손실도 클 것이다. 우리는 이 기회를 통해 비핵화로 가는 경로를 개척할 수 있다. 광물 수출로 얻은 수입 중 상당 부분을 에스크로 계좌에 예치한 다음 북한의 비핵화와 연계하여 추후 지급하는 방법도 그중 하나다.

관건은 북한의 반응이다. 미국 기업의 진출은 북한 체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광물협정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편익은 김정은도 무시하기 어렵다. 현재 북한의 경제난은 현 체제로써는 해결 불가능한 구조적인 문제다. 장기적으로는 체제 유지가 힘들어지고 4대 세습도 어려워진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균형을 이루어야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핵에는 과잉, 경제에는 과소 투자되어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광물협정으로 김정은은 경제에 투입할 새로운 자원을 얻게 될 뿐 아니라 핵에서 경제로의 자원 이동을 정당화할 명분이 생긴다. 미국 기업의 북한 진출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다.

북한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려면 지정학 구도가 바뀌어야 한다. 특히 북·러 밀착으로 북한이 외교적, 군사적 고립 상태에서 벗어난 지금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은 이전보다 크지 않다. 오히려 조급한 대북 접근은 북한의 협상력만 키워 비핵화 대신 핵 동결 협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한국이 중·러와의 양자 관계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들이 한국을 도와 북한 비핵화에 협력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최선의 전략은 한미 결속을 강화하고 가치 및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유사한 국가와 더 깊고 넓게 연대하는 것이다. 이 국가들과 함께 미·중 관계가 대립 일변도로 전개되는 것을 막고, 러시아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어야 북한 문제를 풀 공간이 생긴다.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트럼프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서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은 북핵보다 더 큰 사건, 더 많은 일이 벌어진 시대다. 한국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로드맵을 만들어야 미국이 움직일 수 있다. 물꼬를 터는 트럼프 대통령과 내용을 채우는 한국이 만나야 북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대북정책은 강함과 유연함의 조화이며, 원칙과 지혜의 조율이다. 지정학과 트럼프 시대의 접점에서 좁은 길을 개척하려는 불굴의 노력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여유롭게 과거를 반복하고 있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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