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맞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학교문화예술교육, 꿈의 오케스트라 등
예술 교육 통해 미래세대 창의력 키워
K-문화예술교육 모델 전 세계로 확산
“전 국민이 문화 감수성 키워가게 할 것”

한국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굿즈는 품절 행진을 이어가고, 한국 문화는 글로벌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경험이 가능해지는 시대, 이제 문화예술은 우리의 일상이 됐다. 그 흐름에는 누구나 예술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도록 기회를 넓혀온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있다. 20년 전, 고(故) 이어령 문화부 초대 장관은 “21세기를 이끌 힘은 문화의 다양성과 문화교육의 상상성”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예견은 현실이 됐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그리고 수많은 현장 예술가와 교육자들이 지난 20년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2004년, 정부는 ‘창의한국’ 문화비전을 수립하며 문화예술교육을 제1과제로 지정했다. 창의적 인재 양성과 일상 속 문화적 삶의 실현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문화예술교육은 본격적인 정책 궤도에 올랐다.

학교 안팎으로 스며든 문화예술교육
청소년 문화권 보장이 문화민주주의 실현의 핵심과제로 부각되며 교육부와 문체부는 MOU를 체결하고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매년 5000여 명의 예술가가 전국 8000여 개 학교를 찾아갔고, 20년간 4000만 명이 넘는 학생들과 만났다. 국악·무용·연극·영화 등 8개 분야로 확장된 수업은 학생들의 창의력과 표현력은 물론, 교사와 학교 현장을 점차 바꿔나갔다. 예술가와 함께 학생들은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루기 어려운 감정표현과 신체감각, 창의적 협업을 경험하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소통하는 힘을 길렀다.
한편, 2009년부터는 관련 법령에 따라 전국 17개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지정되며, 문화예술교육이 보다 촘촘히 일상에 스며들 수 있도록 전국 단위 추진체계도 갖춰졌다. 지역 문화 격차 해소, 사회적 돌봄이슈, 개정 교육과정과의 연계를 통해 공교육의 학습 방식에도 다양성을 불어넣었다. 또한 ‘주 5일제’ 도입 시기에는 토요일 여가문화를 활성화하고, 팬데믹 시기에는 온라인 예술교육 콘텐츠와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등 사회변화에 조응하는 국가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정책 기조는 최근 정부의 메시지에서도 다시 강조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문화예술계 수상자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2010년부터 시작한 엘시스테마의 한국형 모델 ‘꿈의 오케스트라’를 언급하며 “예술교육의 기회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박천휴 작가, 조수미 성악가 등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도 참석해 국가 차원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예술교육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의 뜻을 모았다.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꿈의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통해 아동·청소년이 협동과 화합을 배우고 지역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대표 사업이다. 이후 무용, 연극, 시각예술·공간 분야로 확장되며 현재는 ‘꿈의 예술단’이라는 통합 브랜드로 발전했다.
교육진흥원, 인력 양성 중심 정책 전환 주력
국민의 문화기본권으로서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법으로 제정하고, 이를 전담하는 국가기관을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그 역할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맡고 있다.
교육진흥원은 2006년부터 국제 교류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 성과로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제2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에서 전 세계 193개국의 만장일치로 ‘서울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가 채택됐으며, 이를 계기로 매년 5월 넷째 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이 운영되고 있다. 2024년 14년 만에 개최된 3차 세계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 수립 과정에서 한국이 ‘K-문화예술교육 리포트’를 공식 제출함으로써, 다시 한번 국제적 리더십을 입증했다.
이처럼 지난 20년간 축적된 제도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국제 청소년 교류 워크숍 등을 통해 K-문화예술교육 모델을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이젠 수많은 국가가 한국의 문화예술교육 성과와 교육진흥원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예술교육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감정과 감수성을 회복하는 인간 중심의 도구로서 예술은 변화의 시대를 살아갈 힘을 길러준다. 예술교육 전문인력이 곧 국가의 문화 역량이자, 지속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핵심 자원이다.
교육진흥원은 신진 예술가 진로지원, 역량 강화 연수, 사회변화 대응 중심의 인프라 확충 등 인력 양성 중심의 정책 전환에 주력하고 있다. 박은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은 “지난 20년이 문화예술교육의 정책적 기반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앞으로의 20년은 전 국민이 전 생애에 걸쳐 문화감수성을 키워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100년 전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이 말은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의 가장 조용한 혁명이 됐다. K-컬처는 그 힘을 증명했고, 문화예술교육은 우리 일상 속에 그 뿌리를 내렸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다시 묻는다. 미래 사회에서 국가의 힘은 무엇인가. 그 답은 AI와 공존하는 사람, 함께하는 문화예술, 그리고 새로운 일상의 예술 경험이 아닐까.

중앙일보·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