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의 더클래식 in 유럽

검은 옷을 입은 그는 모든 객석 중 가장 어두운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4시간 전, 환하고 눈부신 무대 위에 섰던 피아니스트다. 구석진 의자에서 그는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숙인 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벨기에 브뤼셀은 해가 느리게 떨어지지만 해가 지고 나면 유난히 어둡다. 지금은 5월 17일 밤에서 자정을 넘긴 오전 1시. 공연장 바깥은 이제 검고 차갑다.
-이제 어디로 갈 거예요?
“바로 집으로 돌아가야죠.”
담담하게 웃는 그는 오늘 피아노 연주를 마쳤고, 방금 콩쿠르에서 탈락했다. 준결선 24명에는 들었지만 결선 12명에는 들지 못했다. 심사위원장이 결선 진출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 직후였다.
여기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가 열리는 브뤼셀의 플라제홀.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한 일본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자리에서 튀어 올라 몇 번이고 환호했다. 그 소리가 공연장 전체에 울렸다. 예전부터 서로 잘 알고 지냈던 유럽의 피아니스트들은 10명 정도 우르르 모여 앉았다. 그 무리에서 한 명씩 결선 진출자로 발표될 때마다 흥분이 터져 나왔다. 마치 그들 전체가 상을 받은 것 같았다.
준결선 24명에 들었던 한국인 3명의 이름은 불리지 못했다. 이들이 아마 길게는 몇 년 동안 준비했을 40분 정도의 연주곡은 브뤼셀의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됐다. 결선 마지막 날까지 고려해 2주 정도 더 비워 놨을 모든 시간도 고스란히 각자에게 돌아갔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말 너무한 방식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