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6월6일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순국선열들의 얼을 기리는 날로써 우리나라는 이날을 현충기념일로 정해서 전국이 매년 10시에 사이렌소리와 함께 추념하게 된 것이며 공산침략을 당한 이후로 육해공군의 합동으로 순국 의사들을 추념해 오던 것인데 지금은 군인뿐이 아니라 전민족이 우리 충렬의용(忠烈義勇)한 장병의 공훈을 위하여 이날을 국정공휴일로 하여 관민이 사업을 정지하고 순국의사를 추모하며 일편으로는 우리나라 역사에 영광스럽고 빛나는 영예를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서 다른나라에서 지켜오는 메모리얼데이 이다.
# 왜 6월6일을 현충일로 정하게되었는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6월은 6.25가 들어있는 달이라는 상징성 있고 현충일이 제정된 1956년 6월6일은 24절기 가운데 망종(芒種)일 이었다 한다.
망종은 벼나 보리와 같이 수염이 있는 곡식의 씨앗을 뿌리기 좋은 절기로서 예로부터 이날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고 망종에 씨앗을 뿌리는 것은 한 알의 씨앗이 썩어 새싹을 틔우는 것으로 그 속에는 불멸과 재생의 이치가 담겨 있다하여 오늘날 전사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영생을 기원하는 현충 의식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현충이라는 말은 충렬(忠烈)을 드러낸다는 표현이다.
현충일은 “1956년 국방부령 현충기념일에 관한 규정“에 의하여 ”현충기념일“ 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1975년부터는 ”현충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다가 1982년 대통령령 “각종 기념일등에 관한 규정”에서 기념일의 하나로 포함됐다.
# 현충일 기념일 주재자에도 문제는 있었다.
현충일 추념식에 국가원수가 나온다는 것은 어느 나라 건 불문율이나 우리나라도 현충일이 제정된 초기에는 그렇지못한 부분이 있었다.
현충일 행사는 1983년부터 행사를 주관하게된 보훈처에서는 행사때마다 대통령의 주재를 건의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고 1995년까지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것이 상례화 되다시피 하다가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 당시 보훈처장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성사되어 1996년부터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의전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되었다.
26년간 소외되고 음지속에 있었던 현충일이 양지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지금이라면 이런 일은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현실이었다.
# 현충일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국가적 기념일은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사로운날인 국경일은 3.1절, 광복절, 제헌절, 개천절, 한글날 등 다섯 개로 되어 있다.
현충일은 성격상 국경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존재 형식이다.
국경일은 법률에 근거하지만 현충일은 대통령령에 근거하는 각종 기념일의 하나로 되어있다.
현충일은 최고의 상징적 국가 제례일인 만큼 여타 기념일과는 격이 다르므로 “국경일에 관한법률”이나 “국가보훈기본법”을 고쳐서라도 현충일의 위상을 높여 이날 만큼은 추모의 한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진정한 국민제전이 되어야 한다.
더 이상 6월의 꽃인 현충일이 공휴일로 남아서는 안되고 이 날은 대한민국의 정채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위해 온 국민이 결의를 다지는 날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현충의식을 비롯한 정부행사의 의전규범이 외국의 예를 따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례식이나 추념식에서 사용하는 국화조차도 외례문화에서 온 것이며 영.미 국가에서는 조화로 장미나 백합을 라틴국가에서는 국화를 사용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국화는 영원한 생명의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문화적 코드가 숨어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의 국가 의식도 문화적 전통과 접목하고 개성을 살려나가는 노력이 필요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서 다가오는 현충일에는 온가족이 손에 손잡고 우리지역의 호국의 성지인 임실국립호국원을 찾아 추모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김영도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전북특별자치도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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