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에게 삼촌 벤 파커가 했던 이 말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캐셔로’의 주인공 강상웅(이준호)에게 대입해보자. ‘큰 힘에는 큰 돈이 따른다’가 된다. 상웅은 어느 날 아버지(정승길)로부터 초능력을 물려받았다. 정확히는 강매당했다. 강매인 이유가 있다. 조건을 알게 되면 절대 받지 않을 테니까. 상웅의 초능력은, 손에 쥔 현금만큼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능력을 쓰고 나면 돈이 없어진다. 한 마디로 ‘내돈내힘’이란 소리다. 과연 누가 이런 초능력을 반가워할까.

상웅은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오랜 연인인 민숙(김혜준)과 결혼을 약속했지만, 영혼까지 끌어 모아도 아파트 청약 계약금을 채우지 못해 허덕거리는 평범한 인생. 심지어 프러포즈도 민숙이 ‘신혼부부특공’이 청약 당첨 확률이 더 높기에 제안한 것이다(거기에 ‘플스’를 곁들여). 한 푼이라도 아껴야 내 집 마련할 수 있을까 말까 한 대한민국 청년이 내 돈 태워서 초능력을 발휘해 남을 도우라니, 누가 들어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냉철한 현실주의자 민숙은 빠르게 상웅의 초능력을 실험해 본 후, 초능력을 쓰지 말라 명한다. 제약이 너무 많고, 가격 대비 효율도 떨어진다는 것. 하긴 상웅이 만수르급 재벌이라면 또 모를까, 나 살기도 힘든 판국에 남을 도울 오지랖을 부릴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이 생계형 슈퍼히어로는 하필 엄마의 소중한 곗돈 삼천만 원을 품에 지닌 날, 하필 눈앞에서 죽을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직면하게 된다. 그 삼천만 원은 신혼집 마련을 위해 꼭 필요한 돈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안다. 평범한 사람이 자기 힘으로 수도권에 내 집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런데··· 능력이 있음에도 죽을 위기에 처한 수십 명의 사람들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그들을 구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특별히 착한 사람이 아니여도 보편적 인류애를 지닌 사람이라면 충분히 갈등할 만하다.

상웅뿐 아니라 다른 초능력자들의 능력도 마찬가지로 제약이 있다. 자칭 대한초능력자협회 수장이라는 변호사 변호인(김병철)은 술을 마셔야 능력이 발휘된다. 변호인과 함께 대한초능력자협회 회원인 방은미(김향기)는 섭취한 칼로리만큼 염력을 쓸 수 있다. 얼핏 돈을 써야 하는 상웅보다 쉬운 조건 같지만, 글쎄. 사람이 계속해서 술을 마셔대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은 유치원생도 아는 사실이다. 칼로리 섭취도 마찬가지. ‘빵미’라는 별명을 지닌 은미는 능력을 발휘하려고 매번 빵을 섭취하는데, 아직은 어려서 괜찮을지 몰라도 정제 탄수화물 덩어리인 빵을 그렇게 먹어대다간 몸무게 폭증과 함께 건강에 치명타를 입을 게 분명하다. 무한한 힘을 지닌 기존의 슈퍼히어로들과 달리 ‘캐셔로’의 히어로들은 이 분명한 제약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페이소스를 쌓는다.

‘캐셔로’는 생활 밀착형 히어로들이 초능력 빼고는 자본, 인맥, 권력 등 다 가진 빌런 조직인 ‘범인회’에 맞서 세상을 구하려는 모습을 담는다. 엄청난 자본을 지닌 범인회에게 상웅의 능력은 특히 탐나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능력을 발휘해 세상 무엇이든 가질 수 있으니까. 범인회 수장인 조원도(김의성), 조원도의 아들 조나단(이채민)과 딸 조안나(강한나) 모두 같은 욕심으로 상웅을 쫓는다. 먹고 죽을래도 돈이 없는 상웅은 매순간 간신히 버텨야 살아날 수 있는 구조다. 또 다른 빌런인지 혹은 애매한 조력자인지 알 수 없는 사채업자 박정자(김국희)의 돈까지 빌려가면서.

아쉬운 건 ‘캐셔로’의 짠내 나고 웃픈 이 기발한 설정이 주는 재미가 중후반부로 갈수록 떨어진다는 것. 상웅의 능력치는 절대적으로 돈에 기반하고, 이는 모로 가든 어떻게 가든 결국 돈이 문제인 현실과 겹쳐지면서 진한 공감을 낳았다. 기로의 순간마다 상웅이 속으로 내뱉는 내레이션들은, 초능력만 제거하면 현실의 여느 장삼이사들이 내뱉어도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말들이니까. ‘든든하다. 역시 자신감은 돈에서 나온다’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을 거다. 그런데 그런 말들은 ‘돈이 곧 권력’인 세상을 사는 이들에게 씁쓸함만 남길 뿐이다. 슈퍼히어로물에서 그런 메시지를 남길 리가. 그래서 성웅의 아버지는 벤 파커처럼 상웅에게 말한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돈이 힘인 세상이지만, 사람을 구하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고. 지극히 이상적인 메시지인데, 초반의 기발함과 공감에 비해 설득력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메시지에 어울리는 빌드업이 좀 더 필요했달까. 막판에 메시지를 너무 주입식으로 던져대니, 뒤로 갈수록 화면을 보는 눈길이 느슨해진다.

그럼에도 ‘캐셔로’는 초반 현실 풍자의 블랙 코미디의 타율이, 상웅이 능력을 소비할 때마다 떨어지는 동전마냥 개평을 줍는 심정으로 끝까지 보게 만든다. ‘옷소매 붉은 끝동’ ‘킹더랜드’ ‘태풍상사’를 거쳐 한국형 슈퍼히어로로 등극한 이준호의 맹활약이 또렷하게 느껴지며, ‘폭군의 셰프’로 스타로 성장한 이채민의 빌런을 보는 재미도 분명하다. 이준호 못지않게 눈에 띄는 건 상웅의 여자친구 민숙 역의 김혜준. 모든 슈퍼히어로에는 그를 뒷받침하는 현명한 파트너가 있다는 정석을, 김혜준의 똑부러진 연기가 또 다시 입증한다.
2025년이 끝났다. 2026년에도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할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돈이 중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돈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살아갈수록 깨달을 때가 많다. 돈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 돈에 휩쓸려 마음 다치지 않는 2026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캐셔로’를 소개한다. 모두들, 부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무탈한 한 해 되소서.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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