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수보다 더 딱한 장군들

2025-12-31

‘낙수야, 안 돼!’

그를 말리고 싶었다. 김낙수가 퇴직금을 ‘몰빵’하려는 순간, TV를 향해 고함을 칠 뻔했다. 김낙수는 지난해 큰 인기를 끈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필자와 동갑인 그에게 꽤나 감정이입이 된 터라 최악의 실수 장면에서 과몰입했다. ‘미션 임파서블’에서 노익장을 과시한 톰 크루즈의 까마득한 액션에도 덤덤했는데, 퇴직금 투자를 망설이는 김 부장의 밀당에 진땀이 났다. 결국 김 부장은 사기에 가까운 상가 분양에 속았다. 시가 3억원짜리 신도시 상가를 10억원에 계약했다. 퇴직금 5억원에 대출 5억원을 보탰다. 대기업에 다니던 폼을 유지하려고 ‘월천낙수’(한 달에 1000만원 버는 김낙수를 줄인 말)를 꿈꾼 게 화근이었다. 25년 일한 직장을 눈물로 떠나면서 받은 퇴직금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것도 아내 모르게. 현실이 아닌 드라마에서만 있을 법한 일이었을까.

파면·처벌되는 내란 혐의 사령관들

내란죄는 퇴직급여 전액 박탈 규정

공직자의 자세 돌아보는 계기 돼야

최근 국방부발 뉴스에서 또 다른 김낙수들을 본다. 그들도 아내 모르게 ‘거사’에 가담했거나 휘말려 들어갔을 것이다. 12·3 비상계엄 때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병력을 출동시킨 장군들이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중장),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중장) 등이 국방부의 파면 징계를 받았다. 군인연금 수령액이 절반으로 준다고 한다. 내란 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망상에 따른 죄로 점점 더 냉혹한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김낙수가 분양 사기 악몽에 시달리듯 사령관들도 불법 명령을 악몽처럼 떠올릴 것 같다.

계엄 사태 초기부터 윤 전 대통령의 의원 체포 지시 등을 폭로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해임 징계를 받았다. 징계위에서 파면이 의결됐다가 정상 참작으로 감형됐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과 법원 재판에서 한 증언으로 진실 규명과 헌법질서 회복에 기여했다는 이유다. 파면보다는 가벼운 징계를 받아 군인연금이 정상적으로 지급된다고 한다. 월 수백만원의 연금액과 기대 수명 등으로 추정했을 때 수억원 넘는 손해를 면한 셈이다. 재테크와는 담을 쌓고 지방 근무를 전전해 온 50대 후반의 장성들에게 퇴직금은 거의 유일한 노후 대책이었을 것이다. 장군들과 김 부장이 오버랩된 또 다른 이유다.

계엄 사태로 국민을 배신한 군인들의 노후를 걱정하는 건 불경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가계 위기에 처한 군인 가족들을 생각하니 측은지심이 생긴다. 조만간 처벌을 받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감액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 군인연금법은 재직 중 직무 관련 사유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퇴직 급여를 일정 비율 감액하고, 특히 형법상 내란·외환의 죄, 군형법상 반란·이적의 죄 등은 연금 전액을 박탈(기여금 총액과 이자는 제외)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과거 수십 년 동안 비슷한 궁지에 몰린 군인과 공무원들이 퇴직 급여 감액이 이중처벌이며 재산권 침해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조금씩 법이 바뀌어 왔고 헌재와 법원 판례도 정착됐다. 법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공무원의 성실 의무를 공무원연금 제도의 대전제로 본다. 성실히 복무하지 않으면 국가 부담 부분의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공직자의 범죄를 예방하는 것도 제도의 효과로 본다. 퇴직 급여 감액제로 직무상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공무원과 성실히 근무한 공무원의 보상액에 차이를 둬 성실한 근무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복지로만 알았던 연금 제도는 공직자의 초심을 담보하는 장치였다. 퇴직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초심을 지켜야 했던 셈이다.

계엄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된 장군들의 실패 사례를 보며 새삼 업(嶪)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새해 각오를 다지는 공직자들에게도 반면교사가 되었으면 한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