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영국 정부는 비만 치료 주사를 실업 대책에 활용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웨스 스트리팅 보건장관은 맨체스터에서 진행될 5년간의 실험을 통해 비만 주사가 단순한 건강 개선을 넘어 구직 활동과 고용 유지에도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다국적 제약사 릴리가 2억7900만파운드(약 4900억원)를 투자하며, 신약 ‘마운자로’가 실제로 삶의 질과 고용 상태를 향상할 수 있는지가 핵심 과제로 다뤄진다.
정부의 논리는 명확하다. 비만 관련 질환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 매년 110억파운드의 비용을 초래하고, 노동자의 병가일수를 늘려 경제 생산성에 직접적인 손실을 입힌다. 영국 성인 중 약 64%가 과체중 또는 비만 상태이며, 460만명이 제2형 당뇨를 앓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상황은 심각하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만 치료 주사를 모든 적격자에게 제공할 경우 영국 경제에 연간 45억파운드 규모의 생산성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실제 연구 결과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NHS 체중 감량 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 421명을 조사한 결과, 비만 주사를 맞은 뒤 병가일수가 이전보다 3분의 1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 전 3개월 동안 총 517일의 병가를 썼던 집단은 투여 후 334일로 병가가 감소했으며, 6개월 후에는 아예 병가를 쓰지 않은 비율이 63%에서 77%로 증가했다. 또한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 ‘오젬픽’) 투여 환자들은 연간 근로일수가 늘어나고, 봉사활동이나 육아 같은 무급 노동에도 더 활발히 참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경제적·사회적 생산성에 직접 연결되는 결과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약물이 체중 감량을 넘어 더 광범위한 건강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최근 연구들은 비만 주사가 암과 심혈관 질환 위험을 낮추고, 심지어 알코올 섭취까지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비만 주사가 단지 체중 관리용 치료제를 넘어 만성 질환 관리와 공중보건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비판도 거세다. 첫째, 형평성 문제다. 동일한 건강 상태라도 실업자냐 취업자냐에 따라 치료 기회가 달라진다면 건강권을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하는 셈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둘째, 비용 부담이다. 약물치료가 가져오는 건강 및 경제적 이익은 크지만, 약값이 워낙 비싸 전 국민에게 확대 적용하기에는 재정적 제약이 뒤따른다. 당분간은 위험도가 가장 높은 집단에만 제한적으로 제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셋째, 구조적 한계다. 값싸고 건강에 해로운 음식이 넘쳐나는 사회적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주사 치료로 단기적 체중 감량에 성공하더라도 장기적인 국민 건강 증진 효과는 의문으로 남는다.
이번 영국 정부의 실험은 비만을 단순히 개인의 생활습관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건강 증진 정책인지, 아니면 복지 비용 절감을 위한 단기적 계산인지에 대한 질문도 남는다. 비만 치료가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구조적 환경 개선과 공정한 접근성 보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 실험은 결국 “위험한 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