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xAI가 멤피스 남부 지역에 ‘콜로서스(Colossus)’라는 슈퍼컴퓨터를 구축하기로 하면서 멤피스는 인공지능(AI) 허브 도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또 SK온과 포드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 블루오벌SK, 효성중공업의 HICO, LG 등 한국 기업의 등장으로 멤피스에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이 도시에서 미술관은 ‘문화적 종착지(cultural destination)’ 역할을 합니다.”
미국 멤피스브룩스미술관의 조이 카(사진) 관장은 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기술 중심지로 부상한 도시에서 미술관이 일으키는 경제적 파급 효과와 문화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카 관장은 이달 28일 서울 중구 호텔신라에서 열리는 서울포럼의 특별 포럼인 ‘픽셀 앤 페인트(PIXEL & PAINT)’에서 ‘미술관 하나가 바꿔놓는 지역 경제 효과’를 주제로 아트 저널리스트 슐먼 아나야와 대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인권 도시에서 기술 도시로=미국 테네시주 남서부에 위치한 멤피스는 미시시피강을 따라 자리 잡은 도시다. 블루스·솔·록앤드롤의 발상지이며 엘비스 프레슬리 등 전설적 음악가들의 활동지로 유명하다.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된 로레인모텔이 훗날 국립인권박물관이 되면서 ‘인권 운동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최근 머스크가 xAI의 약 7만 ㎡ 규모 데이터센터를 건립하기로 하면서 멤피스는 ‘글로벌 AI 허브’로 급부상했다. 멤피스는 테네시주 당국과 협력해 xAI가 필요로 하는 150㎿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고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해 냉각수 확보가 용이하다. 주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자본 투자와 고용 창출을 유도하기 위해 재산세 동결 프로그램(PILOT) 등 인센티브도 운영하고 있다. SK·LG·효성 등 한국 기업들도 멤피스를 주목하는 이유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카 관장은 “그간 멤피스의 음악과 음식·역사가 부각됐을 뿐, 따지고 보면 기술을 통해 세계 물류 산업을 혁신시킨 페덱스, 자동차 진단과 공급망 산업을 재창조한 오토존 등이 멤피스를 기반으로 했기에 오래된 ‘기술 허브’라고도 볼 수 있다”면서 “미술관은 이들 기업과 함께 지역을 공유하며 도시의 모습을 형성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멤피스브룩스미술관은 테네시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미술관이다. 베시 밴스 브룩스가 남편 새뮤얼 해밀턴 브룩스를 기리기 위해 1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설립돼 1916년 개관했다. 미술관은 르네상스부터 바로크, 인상주의 미술품과 현대미술까지 1만 점 이상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29개의 전시실과 5000권 이상의 도서를 보유한 도서관으로 이뤄져 있다.
◇예술이 도시의 경제를 바꾼다=카 관장은 기술과 경제뿐 아니라 예술과 문화 역시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핵심 동력이라고 믿는다. 그는 “우리는 문화, 특히 미술관이 도시의 미래를 어떻게 재정의할 수 있는지 여러 번 목격해왔다”며 “빌바오구겐하임미술관이 그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카 관장은 지금의 멤피스가 쇠락한 철강 도시에서 문화 도시로 변모한 스페인 빌바오와 비슷한 전환점에 있다고 진단한다. 1955·1973·1989년 세 차례에 걸쳐 확장된 미술관이 2026년 개관을 목표로 신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멤피스 도심에 1만 1000㎡ 이상의 규모로 새로운 미술관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에는 주 예산을 포함해 1억 8000만 달러(약 2500억 원)가량이 투입될 계획이다. 건축 설계와 디자인은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 중국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홍콩에 들어선 아시아 최대의 미술관 M+ 등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세계적 건축가 듀오 헤르조그&드뫼롱이 맡았다. 신축될 미술관은 전시 공간 외에도 교육 공간과 광장·극장 등을 포함한다. 주목할 지점은 미술관 신축이 ‘멤피스 강변 재개발 정책’의 일환이라는 사실이다. 미술관을 주축으로 도시의 문화적 중심지를 도심으로 이동시켜 지역 경제 활성화와 관광산업 발전을 이끌어내려는 포석이다. 미술관은 이 같은 정책을 고려해 강을 조망할 수 있는 ‘리버뷰 테라스’와 ‘리버 윈도’를 조성할 계획이다.
카 관장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관광을 자극할 새 미술관은 단지 전시장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새롭게 쓰는 공공의 공간이 될 것”이라며 세계적 기업들이 멤피스를 향하는 것과 관련해 “새로운 이웃, 새로운 방문자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맞아들이는 모든 과정의 중심인 동시에 ‘문화적 종착지’로서 미술관의 역할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한편 ‘AI 허브’로 떠오르는 멤피스의 화려함 이면에는 환경오염 및 지역 소통의 문제 등 그늘도 존재한다. 카 관장은 미술관이 단지 문화·예술을 위한 기관을 넘어 사회적 갈등을 완충하고 해소하며 경제적 성장과 동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기술 혁신의 시대를 살며 혜택을 누리고 있기에 우리는 인간성과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며 미술관이 그런 곳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 관장은 미술관이 단지 걸작이라 불리는 미술품만 전시하는 곳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카 관장은 “미술관은 관람객과 지역 주민들에게 ‘균형’을 제공해야 한다”며 “비판적 사고, 공감, 문화적 소양을 촉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하는 세계를 헤쳐나갈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할 수 있는 미술관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멤피스브룩스미술관은 아름다움, 성찰, 대화 그리고 공동의 책임감을 위한 공간이 될 것”이라며 “물론 한국의 미술관도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기술의 접속, 예술의 확장’을 주제로 내건 이번 ‘픽셀 앤 페인트’에서 카 관장은 미술관이 불러오는 지역 경제의 파급효과를 이야기 한다. 그의 통찰에 이어 부산시립미술관장,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등을 역임한 기혜경 홍익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미술관은 어떻게 지역과 삶을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 안미희 전 경기도미술관장,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이 패널로 참석해 지역 미술관의 도시 활성화와 문화 확산에 대한 경험과 시도, 정책적 제언 등을 이야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