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제주 해변이 ‘신종 마약 루트’?

2025-11-13

지난해 가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인근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 인근 세관에서 발견된 화물은 평범해 보였다. 중국산 산업용 화학물질로 신고된 컨테이너 안에는 펜타닐 전구체가 숨겨져 있었다. 전구체 화학물질은 합성 마약인 펜타닐 제조에 쓰이는 원료다. 통관을 거친 이 화학 물질들은 멕시코 북부의 비밀 실험실로 향했고, 며칠 후에는 알약 형태로 정제돼 미국으로 돌아왔다. 오늘날 미국과 멕시코 국경은 단지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경계선이 아니다. 그곳은 합법적 무역을 가장한 마약 루트이기도 하다.

전통적 마약 루트는 국제 마약 밀매 조직이 헤로인이나 코카인 등 마약을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옮기는 주요 경로를 뜻한다. 지도 위의 고정된 하나의 줄처럼 연결됐다. 이러한 마약 루트는 이제 우편·상업 물류·다크 웹(dark web)을 가로지르는 생태계로 진화했다. 더 빠르고 더 치명적인 네트워크로 무장한 것이다. 수사와 단속만으로는 따라잡기 힘든 지경이다. 이러한 변화는 공중보건과 지역 안보, 국제정치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미 해군은 지난 11일 세계 최대 제럴드 포드 항모 전단이 미 남부사령부 작전 구역에 배치됐다고 발표했다.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해 일대에서 의심 선박들을 잇달아 타격해 온 미국이 항공모함까지 투입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밀반입하는 거점으로 베네수엘라를 지목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권을 압박해 왔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19세기 아편전쟁의 재연이 될 수 있다.

최근 제주에서 중국산 ‘차’(茶) 봉지로 위장한 신종 마약 케타민이 잇따라 발견되며 제주 해변이 신종 마약 루트가 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서귀포시 성산읍 광치기 해변에서 케타민 20㎏이 발견된 이후 40여 일 동안 10차례에 걸쳐 해안가에서 비슷한 형태의 마약 덩어리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들 마약이 어떻게 제주 해안으로 들어왔는지는 오리무중이다. 마약 루트는 이미 다각화하고 글로벌화한 상태다. 더구나 국내 마약 확산 속도는 심각한 지경 아닌가. 제주 바다 감시 대상에 마약 운반선도 올려야 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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