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일본 정부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조선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조선업에 대한 기술 지원과 공동 선박 건조를 제안하며, 그 대가로 추가 관세 철회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후 무역 적자 해소와 미국의 산업 부흥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가운데, 산업 경쟁력을 외교 무기로 활용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주목할 점은 일본이 조선업 협력을 단지 산업 측면의 거래에 그치지 않고 안보적 기여로 확장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해군력 회복을 꾀하는 미국의 전략과 발을 맞추며 "군사 전용이 가능한 상업 선박의 공동 건조"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는 "해양을 포함한 방위 산업의 공동 생산·개발·유지 정비를 통해 동맹의 억지력과 대응력을 강화한다"고 명시했다. 현재는 미국 해군 함정의 일본 내 정비 확대 방안도 'DICAS(미일 방위산업 협력·획득·유지 정비 정기협의)'를 통해 논의 중이다.

일본의 의도는 뚜렷하다. 조선 카드를 통해 "우리는 미국의 단순한 무역 상대국이 아닌 안보 파트너다"라는 메시지를 트럼프 정부에 전달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 산업의 기술력과 친환경 선박 개발 역량을 활용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아우르는 고부가가치 협력 모델을 제안하고 있다. 단순한 수출입 품목이 아닌 미래 전략 산업으로 조선을 재정의하면서 외교 무대로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국 산업 보호와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독자 노선을 강화하려는 트럼프 정부의 기조와도 맞물린다. 미국이 동맹국과 손을 잡고 '중국 대항 전선'을 형성하려는 상황에서, 일본은 "신뢰할 수 있는 조선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한국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던진 적이 있다. 그는 지난해 재선 직후, 한국의 조선 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 큰 조선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경쟁력을 외교 전략의 지렛대로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제안하는 '조선·안보 연계 전략'이 구체화되면, 한국은 조선 기술력에서 일본에 앞서 있음에도 외교적 주도권을 일본에 내줄 수 있다.
이제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도 조선업을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닌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이는 단지 시장 점유율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의 방산 협력, 에너지 공급망 안정화, 인도·태평양 전략 등과 맞물려 움직이는 큰 그림 속에서 조선업을 어떻게 포지셔닝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미국이 추진 중인 해양 물류 인프라 복원 사업이나, 연합 해군력 증강 계획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한미 양국 간에 조선·방산·기술 협력을 통합하는 포괄적 전략 대화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조선업의 기술력은 한국과 일본 모두 인정받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국가 브랜드'로 확장하고, 외교 전략에 연결시키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 위에 조선 기술을 '전략 자산'으로 올려놓았다. 트럼프 정부의 산업 정책과 안보 전략이 조선업이라는 영역까지 확장된 이상, 더 이상 이 흐름을 일본만의 일로 바라봐선 안 된다.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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