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리·시장 침체에 리스크 고조
금리·세금·계약금 유리
팬데믹 이후 적발 어려워져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치적 표적 중 한 명인 리사 쿡 연방준비제도(Fed) 이사의 모기지 사기를 빌미로 사임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미국 주택시장의 뿌리 깊은 사기 문제가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포함한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대통령에게 비판을 날을 세우는 두 민주당 당원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검찰총장과 애덤 쉬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에 대해서도 비슷한 혐의로 조사에 나섰다.
이들의 혐의는 소위 모기지 거주 사기(mortgage occupancy fraud)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별장이나 투자용 부동산을 주거주지로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용도를 허위로 밝히고 대출을 받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출을 받는 차용자들이 매입하려는 주택 용도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 비용을 떨어뜨리고 모기지 조건을 유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기지 자문회사인 스트래트모어 그룹에 따르면 주거주지의 경우 소위 세컨드 하우스나 투자용 부동산보다 초기 계약금이 매매 가격의 3~5%인 데 반해 투자용 부동산의 경우 최소 20%의 초기 계약금이 필요하고, 세컨드 하우스도 일반적으로 매매 가격의 10~20%를 내야 한다.
모기지 금리도 세컨드 하우스 대출이 주거주를 위한 부동산에 비해 0.25~0.50%포인트 높고, 투자용 부동산의 경우 0.50~0.75%포인트 높다. 최근 30년 만기 고정 모기지의 평균 금리는 6.58%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주택금융청(FHFA)의 수장 빌 펄트는 CNBC와 인터뷰에서 "실제 거주하는 주택인 경우 경기 침체 시 압류를 당하거나 대출금을 갚지 않을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설명한다.
어떤 경우에는 대출을 받아 매입한 주택을 주거주지로 적시할 경우 소유자의 재산세 고지서도 낮출 수 있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난 2023년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거주 상태를 허위로 신고한 대출자의 비율이 2006년 주택 버블 시기에 6.8%로 정점을 찍은 뒤 2~3%로 떨어졌다.

시장 분석 기관 코탈리티는 2025년 2분기 기준 모기지 신청서 중 사기 위험이 의심되는 사례가 0.86%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116건 중 1건 정도라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수치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는 대출 기관이 새 부동산과 차용자의 직장 간 거리를 확인해 사기 가능성 여부를 가려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원격 근무가 늘어나면서 이 같은 방법으로는 사기를 가려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코탈리티도 최근 보고서에서 "고금리가 지속된 데다 주택 시장 침체가 두드러지고, 여기에 보험료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모기지 거주 사기를 부추기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매도자에게 불리한 시장 여건이 이어지면서 허위 계약금을 기재하거나 가격을 부풀리는 등의 불법 거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부동산 매입자의 신원을 숨기고 모기지 대출을 받는 소위 대리 구매자가 증가할 수도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잠재적인 사기 행위를 가려내는 데도 AI 기술이 동원되고 있다. 패니메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AI 업체 팔란티어와 협력해 모기지 사기 행위를 적발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고 전했다.
패니메이는 미국 모기지 4건 중 1건을 보증한다. 신청서 양을 고려할 때 대출 금융회사와 정부 후원 기관이 모든 개별 서류를 면밀히 조사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AI가 수백만 건의 모기지 신청서에서 사기 가능성을 식별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는 모습이다.
모기지 사기 적발은 여러 기관들의 협력 하에 이뤄진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대출 기관이 잠재적인 사기 행위를 발견할 때 연방수사국(FBI)에 의심 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또는 재향군인부와 같은 모기지 보증 기관에도 사건을 보고한다.
도매 모기지 대출업체인 플라이홈스의 공동 창업자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라이언 디블은 마켓워치와 인터뷰에서 "모기지 사기가 최종적으로 확인될 경우 징역형부터 벌금 등의 처벌이 이뤄지고, 영구적인 신용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기지 사기를 식별하는 데 최전선은 대출 기관들이다. 이들은 사기 위험을 판단하기 위해 대출 신청서 샘플링을 실시하고, 은행 명세서를 포함한 서류를 은행 측과 대조해 위조 여부를 확인한다. 세금 신고서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미 국세청(IRS)에 증명서를 요청할 수도 있다.
보도에 따르면 FBI는 2024년 대출 기관들로부터 약 3600건의 사기 의심 사례를 보고 받았고, 2025년 들어서는 최근까지 1900건이 신고됐다.
미국 양형위원회(US Sentencing Commission)에 따르면 2024년 모기지 사기로 38명이 선고를 받았고, 이들의 평균 형량은 18개월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모기지 거주 사기 혐의를 받는 세 인물의 사례는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쉬프 의원의 경우 메릴랜드의 별장을 10년 넘게 주거주지로 신고한 혐의를 받는다. 이에 대해 그의 대변인은 의원으로 활동하며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두 개 거주지를 오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제임스 총장은 뉴욕과 버지니아에 각각 한 채씩 두 채의 주택을 주거주지로 적시했고, 단독 주택을 포함해 4세대 이하 부동산에만 제공되는 대출로 브루클린의 5세대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쿡 이사의 혐의는 미시건과 조지아에 각각 한 채 씩의 주택을 주거주지로 대출을 받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두 개의 주거주지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다.
쉬프 의원과 제임스 총장은 오랜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정적으로 분류됐다. 2022년 초 바이든 행정부 시절 임명된 쿡 이사는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저항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제롬 파월 의장과 긴밀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들 세 명을 모기지 거주 사기 혐의로 고발한 가운데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 제도를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