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지 않은 의미가 있지만 별로 놀랍지 않은 사건들이 있다. 지난 9월, 그룹 샤이니의 민호가 대한체육회 홍보대사로 위촉된 일이 그렇다. 사실 대단하지만, 해야 할 사람이 하게 된 느낌. 공적인 사건은 아니지만, 지난 10월 말 2주에 걸쳐 방영한 MBC <나 혼자 산다>(이하 <나혼산>) 가을 운동회에서 벌어진 일도 그러하다. 민호는 100m 달리기와 계주에서의 활약으로 MVP를 타고, 그 상품 중 하나를 이 날 MBC 사측을 대표해 온 고강용 아나운서에게 선물했다. 특출난 성취고 따뜻한 미담이지만 역시 별로 놀랍진 않다. 굳이 과거 KBS <출발! 드림팀> 시절까지 내려가지 않더라도 올해 7월 <나혼산>에 출연했던 그는 생활체육 수준을 뛰어넘는 고강도 컨디셔닝 운동을 웃는 얼굴로 하루에 두 번씩 하는 모습으로 패널들에게 징글징글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10월 출연분에서는 한 끼 8천 원 단골 한식 뷔페에서 푸짐히 식사한 뒤 자신은 남들보다 더 많이 먹는 편이라며 1만 원을 결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데뷔 이후 민호는 거의 언제나 만능 스포츠맨이었고, 사생활 논란 없이 꽤 많은 미담을 적립했다. 새삼 그의 운동신경과 승부욕에 대해 상찬하거나, 소위 인성 영업을 하려는 건 아니다. TV를 포함해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을 근거로 연예인에 대해 어떤 사람이라고 짐작하거나 규정하는 건 대체로 위험한 일이다. 다만 이 정도로 꾸준하게 유지하는 대외적 이미지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메시지다. 즉 민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괄호 안에 미지수로 남겨두더라도, 그가 이상적 상으로 일관되게 유지하고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사회적 인격은 좋은 삶에 대한 그럴싸한 모델이 될 수 있다. 한국 사회와 연예계의 지형에서 민호가 지닌 독특한 남성성의 맥락을 생각하면 더더욱.
앞서 언급한 <나혼산> 7월 방영분에서 자신이 운동하는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동기부여 되길 바란다고도 했지만, 본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민호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말했다. 자신이 김연경을 비롯한 운동선수들의 열정을 보며 자신의 일에 대한 영감을 받듯 자신도 그러고 싶노라고. 당장 <나혼산>의 박나래는 그의 영상을 보며 광배근이 근질거리며 운동 욕구가 솟아오른다고 했다. 숨이 턱까지 차는 사점을 지나며 희열을 느끼는 듯한 그의 표정엔 묘한 전염력이 있다. 그런 면에서 민호는 스포츠 만화를 인간으로 만든 느낌이다. 흔히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이라 불리는 만화 주인공 같은 외모나 재능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물론 꽤 중요한 이유다). <슬램덩크>가 그러하듯 잘 만든 스포츠 만화를 보고 나면 공을 들고 운동장에 나가고 싶어진다. 민호의 운동 영상이 그러하다. 과정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한편, 그 모든 게 지나가고 난 뒤의 성취감과 온몸 구석구석에서 대사가 활발해지는 느낌까지 대리 체험된다. 단순한 고행이 아닌 살아있다는 생생한 기분. 민호만큼 고강도 운동까진 무리더라도 간만에 땀 나고 헐떡일 정도까진 몸을 움직여보고 싶어진다. 기안84가 “취미로 하는 사람 중에선 끝판”이라 할 정도로 엄청난 운동량과 운동능력을 보여주지만, 그는 신체적 우월함을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이거 재밌으니 같이 해보자고 해맑게(사실 이게 조금 무섭긴 하다) 말을 건다. 근육질 몸매에 엄청난 운동광이지만 그의 열정과 신체 이미지에서 마초적인 느낌이 조금도 나지 않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근래 유행하던 테토남/에겐남이라는 구분이 민호 같은 타입의 남성에겐 별로 의미 없어 보이는 건 그래서다. 그의 잘 발달한 전완근에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번 <나혼산> 운동회에서 “내가 질 거 같아?”라고 안광을 빛내며 외칠 때의 승부욕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또한 아무도 관심 없던 기안84의 김치볶음밥 도시락에 굳이 먼저 “형의 정성이 궁금”하다며 손을 내밀어 챙기는 세심함 역시 민호가 자주 보여주던 모습이다. 이에 기안84는 “운동도 잘하고 인성까지 좋아”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장점을 지닌 게 아니라, 삶의 일관된 한 가지 태도의 서로 다른 양면이 드러난 것에 가깝다. 유튜브에서의 운동 영상에서 그는 입버릇처럼 ‘이겨내’라고 되뇐다. 얼핏 ‘하면 된다’는 구시대적인 근성론 같지만 전혀 다르다. 과거 MBC <아이돌스타 육상·수영 선수권대회>에서 그러했듯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성과를 내는 것보다는 오롯이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 완전연소를 지향한다. 자신의 모든 종목 등번호를 99로 하는 이유에 대해 “100점이 만점인데, 그에 조금 부족한 99를 두고 부족한 1점을 최선을 다해 채우자”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건 100이라는 성과가 아니라 부족한 1을 인식하고 매 순간 관성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철인 3종 훈련을 하고 또 하이록스 훈련을 하러 가는 것만이 아니라, 8천 원만 내도 되는 밥집에서 그래도 많이 먹은 만큼 고마움에 더 낼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정당하게 쟁취한 운동회 상품이지만 유일한 회사원으로서 정장 입고 고생한 아나운서를 위해 선물하는 마음 씀씀이일 수도 있다. 야구장에서 괴력을 보여주는 오타니 쇼헤이와 남이 버린 운을 줍는다며 쓰레기를 줍는 오타니가 하나의 삶의 태도로 수렴하듯, 민호 역시 몸과 마음의 건강함을 자기 삶에서 통합된 정합적인 스타일로 추구한다. 관념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형태로.
민호 본인이 말하던 영감이 정확히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는 그의 모습이 남성성에 있어 유의미한 영감을 주는 건 사실이다. 앞서 테토/에겐 같은 분류로 그를 규정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그가 전통적 젠더 규범을 해체하는 건 아니다. 그보단 전통적 남성성의 사회적 각본 안에서 긍정적 가치로 여겨졌지만 딱히 제대로 재현된 적 없던 강인함, 예의, 책임감, 이타심 같은 가치들이 실제로 추구되었을 때, 결국 그 구체적 형태는 가부장적이거나 공격적인 남성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는 것뿐이다. 민호가 <나혼산>에서 자기 형과 형의 친구 코드쿤스트 등과 함께 노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 스포츠에서의 승부욕은 굉장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놀리는 패널들에게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으며, 축구로 나이 먹은 형들을 도발하지만 실력으로 호모 소셜 내에서 서열을 나누는 것엔 관심이 없다. 자신에 대한 통제는 엄격하지만, 전혀 다른 성격과 생활 패턴을 지닌 키와는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며 티격태격 오랜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군대 체질이지만, 그렇기에 복무에 대한 원념을 엉뚱한 곳에 발산하지도 않는다. 두루 사랑받고 본인의 자존감과 행복도 높아 보이는 삶의 모델. 물론 100점 만점에 부족한 1을 채우려 매번 몸과 마음의 관성을 이겨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낡은 남성성의 각본으로 남과 자신을 괴롭히면서 행복을 바라는 것보단 훨씬 가망 있어 보인다. 그러니 민호의 옛 별명 ‘불꽃 카리스마’는 여전히 또한 새롭게 유효할 수 있지 않을까. 군림하는 남성성으로서의 카리스마가 아닌 자신을 연소한 뜨거운 열정에 감화시키는 방식으로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