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밖에서 전시 관람…“예술은 미술관 안에만 존재하지 않아”

2025-11-13

프랑스 파리 팔레 루아얄 광장 2번지. 루브르 박물관과 장식미술관, 그랑 팔레로 이어지며 파리 문화예술의 중심축이라 불리는 이곳에 지난달 25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이 재개관했다. 1984년 설립 당시엔 파리 교외인 주이 앙 조자에, 10년 뒤엔 라스파이 대로에 자리했던 재단은 세번째 둥지로 19세기 루브르 백화점이 있던 건물을 택했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건 크리스 더컨(Chris Dercon·67)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총괄대표. 그는 런던 테이트모던 디렉터, 프랑스 국립 박물관 연합-파리 그랑 팔레 회장 등을 거쳐 2023년부터 재단을 맡고 있다. 지난 7일 본지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더컨 대표는 “재단이 파리 중심부에 자리하게 된 것은 새로운 사명감을 의미한다”며 “예술과 도시가 다시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41년의 역사, 공공을 향한 확장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프랑스 최초로 상업 브랜드가 설립한 예술 후원 문화재단이다. 설립 당시 까르띠에 메종 회장이던 알랭 도미니크 페랭은 “예술은 브랜드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는 신념 아래 예술 후원을 마케팅이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했다.

더컨 대표 역시 브랜드의 후광보다 공공성을 증명하는 것을 재개관의 핵심으로 꼽았다. “재단은 예술가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존재하기에 설립자의 초상화를 그리는 사립 미술관이 아니라, 예술가와 대중의 만남을 지원하는 공공적 제도에 가깝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재단의 정체성을 ‘대화·개방·실험’으로 정의했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는 예술의 확장된 개념을 추구했다”며 “단순히 미술뿐 아니라 디자인·영화·음악·공예까지 포괄했다”고 밝혔다.

예술과 공공성, 도시를 새로 쓰다

더컨 대표는 건물에 대해서도 의미를 부여했다.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 건축이자 전시라는 행위 자체를 다시 질문하게 하는 공간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를 위해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장 누벨은 19세기 오스만 양식의 기존 외관을 유지하면서도 내부를 완전히 바꿨다. 건물 중앙을 비우고 다섯 개의 이동식 강철 플랫폼을 수평으로 배치, 전시의 높이와 깊이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설계했다. 또 유리 지붕과 파사드의 개폐로 내부에 있으면서도 도시의 움직임과 빛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더컨 대표는 “예술은 더 이상 미술관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도시를 새로운 공공의 장으로 재정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건물은 관람을 위해 설계된 하나의 기계, ‘관람기계(Machine for Viewing)’”라고 정의했다.

재개관을 기념해 내년 8월 23일까지 열리는 ‘상설 전시(Exposition Générale)’는 19세기 루브르 백화점에서 열린 전시가 모티브가 됐다. 당시 예술과 기술·산업을 함께 다룬 ‘현대의 살롱(Salon de la modernité)’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하며, 과거 백화점이 지녔던 ‘공공 전시 공간’ 개념을 동시대 미술의 실험 무대로 이어갔다. 100여 명 작가의 600여 점 작품이 함께 했는데, 건축의 사회적 역할을 탐구하는 ‘임시 건축 연구소’, 생태계와 예술의 관계를 다룬 ‘생태계 보존에 대한 고찰’, 공예와 디자인이 담긴 ‘물질과 기술을 위한 실험 공간’, 과학과 우주를 주제로 한 ‘미래지향적 이야기의 탐구’ 등 네 가지 축으로 나뉜다.

더컨 대표는 이 전시의 취지를 예술의 미래로 확장했다. 지난 40여 년 재단 역사의 집약이자 앞으로 어떤 예술이 태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의 장이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무엇이 예술인가’가 아니라 ‘언제 예술이 되는가’를 묻는다”면서 “건축과 디자인, 과학과 기술이 교차하는 그 순간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백남준은 나의 예술적 아버지”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국과의 인연을 특별히 언급했다. 재단이 올해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개최한 ‘론 뮤익 전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서울을 ‘예술과 도시가 가장 생생하게 만나는 장소’로 꼽은 그는 “스스로 무엇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지를 판단하는 힘이 바로 예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 아티스트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1980년대 함께 작업한 고 백남준 작가를 두고 또 다른 세계를 배운 예술적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했다. 김성환 작가 역시 “시간·기억·정체성을 다루는 방식에서 특별한 울림이 있다”면서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았다.

12월 다시 한국을 찾겠다는 그는 “아트선재센터의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전시와 서울시립미술관의 ‘강렬한 근접성’을 꼭 보고 싶다”면서 “걸프 지역의 예술가들이 한국에서 처음 작품을 선보이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고 덧붙였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