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2025-05-16

김장하 어른이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게 던진 질문이 화제다.

“다수결이 민주주의 꽃이라 그러는데… 요란한 소수가 조용한 다수를 지배한다,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

문형배 전 권한대행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뒤, 인사차 진주로 김장하 선생을 찾아간 자리였다. 온 국민이 가슴 졸이며 지켜보았던, 대통령 탄핵 심판의 선고 장면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터라, 이 질문과 대답도 관심을 모았다.

문 전 권한대행은 한참 침묵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요란한 소수를 설득하고 다수의 뜻을 세워나가는 지도자가… 그런 게 가능한 체제가 민주주의라고 저는 생각하고, 이번에 탄핵도 그런 연장선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닌가….”

질문이 참 깊고 멋있다. 짧은 말 안에 많은 것이 담겨 있는 질문, 좋은 대답을 이끌어내는 질문이다. 현실의 핵심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다. 민주주의와 다수결 원칙의 관계는 무엇이냐? 지금 우리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같은 식의 상투적 질문과는 결이 다르다.

‘지배당하고 있는 조용한 다수’인 대다수 국민의 생각을 적절하게 대변하면서, 일그러진 우리의 민주주의를 질타한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것”이라는 평소의 소신을 고스란히 담은 질문이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선생님은 답이 있으십니까?”라고 물으니, 김장하 선생은 대답한다. “답을 몰라서 물어본 것”이라고….

대화는 일단 거기서 끝났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하고픈 다음 질문은 아마도 “이번 선거에서 그런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쩌면 그 장면을 마음으로 뜻깊게 본 모든 사람들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답하며 절망적으로 어두워지는 표정들. 그리고, “언젠가는, 언젠가는 반드시…”라는 간절한 바램….

진정성 있는 질문이 좋은 답을 이끌어내는 법이다. 김장하 선생의 소박한 질문이 묵직한 울림을 갖는 것은 질문 안에 정확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져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걱정을 대변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질문이다. 그래서 진정성이 전해지는 것이다.

현재로는 최선의 제도라고 믿고 있는 민주주의의 한계와 약점이 사방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런 현실의 시련을 매우 혹독하게 겪은 것이 한국이다. 그러니, ‘요란한 소수와 조용한 다수’라는 표현이 큰 울림을 줄 수밖에. 결국 조용한 소수가 이겼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과 자부심도 깔려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다수결도 실제로는 많은 문제점과 한계를 가진 제도다. 선거에서 무슨 수를 쓰건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가 승리자가 되어 모든 것을 독점하는 승자독식의 폭력이 무섭지만, 그걸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오직 대화와 타협만이 슬기로운 해결책인데 그게 참….

바람직한 대화와 소통은 진지한 질문과 건강한 답변으로 이루어진다. 나를 내세우기에 앞서 먼저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생각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핵심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던지는 대상에 대한 진심 어린 신뢰와 정말로 좋은 대답을 듣고 싶은 열린 마음이다. 김장하 선생과 문형배 전 재판관이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은 그런 대화다.

오늘날의 정치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인데, 안타깝게도 가장 부족한 부분이다. 물론, 한국 정치판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선 질문 잘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그건 어디서 배우나?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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