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어버이 삶을 기억할 또다른 방법

2025-05-08

매년 돌아오는 어버이날을 맞이하면서 자식들은 새삼 부모님의 건강과 장수를 빌어본다. 그런 간절한 바람에도 한 해 한 해 부모님이 노쇠해지는 일을 지켜봐야 하는 것은 모든 자식들이 겪어야 하는 숙명 같은 일이다. 언젠가는 영원한 이별도 받아들여야 한다. 제대로 봉양하려고 마음을 다잡았건만 부모는 기다려 주시지 않더라는 풍수지탄(風樹之嘆)을 되뇌지 않는 자식이 몇이나 될까.

안타깝지만 어떤 이도 부모님과의 이별을 피할 수 없다. 마침내 부모님께 몇 마디 말을 건네는 것조차 할 수 없음에 마음이 무너진다. 이제 꿈속에서나 기대해야 할 바람이 되고 만다. 그래도 뭔가 방법이 없을까. 아쉬우나마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부모님이 남긴 유품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물론 그 또한 가슴 아픈 일이다. 상실의 아픔이 얼마간 잦아들고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점을 기다리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며 많은 흔적을 남긴다. 메모·수첩·편지·일지·일기·서류·사진·녹음·동영상 등과 같은 기록물부터 아끼던 소지품과 일반 생활용품까지 다양하다. ‘유품’이라고 불리는 물건들이다. 허수로이 보자면 낡고 평범한 그저 그런 물건이라 치부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과 깊은 인연으로 엮여 있는 부모의 유품이 아닌가. 희로애락을 겪으며 한평생 열심히 인생을 살아낸 작은 거인들의 소중한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은가.

지난해 말의 일이다. 한 미술사 연구자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어머니의 삶을, 부부의 삶을, 가족의 삶을 담담한 필치로 써내려간 책을 출간했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어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부모의 삶을 기리고 기억하려는 누구라도 따라 해봄 직한 아름다운 시도다. 부모와 자식의 깊은 인연을 이어가는 절절한 일에 글이 좀 서툰들 무슨 대수일까.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박물관에서 만나는 전시품도 누군가의 유품이다. 박물관은 이런 물건들과 어렵사리 대화를 시도하는 곳이다. 어떻게 보면 박물관에서는 주인도 모르는, 또 아무런 개인적 인연도 없는 물건들과도 이야기를 해보려고 애를 쓴다. 박물관에 비해 본다면 어버이가 남긴 기록과 물건의 의미와 가치를 살피는 데 자식들이 훨씬 나은 위치에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게 어버이의 삶을 기념하는 아름다운 방법이 더 큰 빛을 낼 수 있도록 권하고 싶은 일이 있다. 어버이와 이별하기 전에 작업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유품’이 되기 전에 기록이면 기록, 물건이면 물건에 대한 구술을 직접 듣고 기록해 두는 것이다. 이런 구술을 듣다 보면 사진 속 부모님 곁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한국 현대사와 문화사의 소중한 자료가 된다.

또 하나, 언젠가 유품과도 헤어질 시간이 됐을 때 박물관을 떠올리는 일이다. 최근 한국의 공공 박물관들은 생활문화사 자료로 콘텐츠의 범위를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전통 시대 유명한 선비의 일기만큼이나 격동의 현대사를 충실히 살아낸 사람들의 일기 자료도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이런 게 기증이 될까’하는 궁금증이 생겼을 때 국립민속박물관 같은 생활문화를 다루는 박물관의 기증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해 이런 대답을 들어보길 바란다. “네,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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