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리 채플린이 주연한 영화 <황금광 시대>는 미국 알래스카까지 밀려든 ‘골드러시’의 시대상을 다뤘다. 황금을 찾아 동토에 발을 디딘 찰리가 굶주림 끝에 구두를 삶아 먹고, 구두끈을 스파게티처럼 돌돌 말아 먹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이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다는 소재는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얘기다. 금광을 찾다 폭설에 갇힌 사람들이 죽은 동료를 먹었다는 실화는 끔찍하다. 이 장면이 현실이 된다고 생각해보라. 그곳이 바로 지옥도가 아닐까.
2023년 10월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전쟁 이후 가자지구는 지옥도 그 자체였다. 가자 보건부는 24일 현재 최소 6만2686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전쟁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 숨지는 이들이 많았다면, 얼마 전부터는 사람들이 굶어 죽기 시작했다. 굶주림 등으로 사망한 사람은 289명이며, 이 중 115명이 어린아이다. 이스라엘이 구호품 유입을 차단해 벌어진 비극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해놓고 ‘가자 인도주의 재단(GHF)’을 만들어 미국 민간 보안회사에 식량 배급을 맡기고 있다. 구호품을 받으러 사람들이 몰려들면 이스라엘군이 총질을 한다. 음식을 미끼처럼 놓고 굶주린 이들을 학살하는 것이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기구(UNRWA)는 가자를 “지상의 지옥”이라고 묘사했다. 국제기구 ‘통합식량안보단계(IPC)’는 가자지구에 식량 불안 최고 단계(5단계) 경고인 ‘기근’을 22일(현지시간) 공식 선언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통해 “가자 기근은 인류 그 자체의 실패”라며 기근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미국 터프츠대 알렉스 드발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처럼 세밀하게 설계되고 통제된 기근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기근 발표를 “완전한 거짓말”이라며 부인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IPC가 하마스의 허위 캠페인에 들어맞는 맞춤형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했다. 굶어 죽는 현실 앞에서 기근 집계의 방법론을 따지는 추악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나치 유대인 학살 피해자라는 정체성에 기대 온갖 악행을 일삼아온 이스라엘을 국제 사회가 언제까지 방치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