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기버스50’ 4차 10명 선정
파위위크 참여단체 23곳 후보 추천

주거·의료·아동·일자리 등 다양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나눔을 실천한 기부자들이 ‘한국의 기부자들: The Givers 50’(이하 더기버스50)의 네 번째 명단에 올랐다. 4일 공개된 더기버스 기부자 명단에는 김병수·김순분-전종복(부부)·김애식·김은진·김진만·나태주·박선우·박윤규·정복수·한승우 등이 포함됐다.
‘더기버스50’은 초고액기부자나 유명인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 있는 기부를 꾸준히 이어가는 평범한 기부자를 조명하는 프로젝트다. 중앙일보 공익섹션 더버터와 비영리단체들이 함께하는 민간 주도 기부문화 확산 캠페인 ‘파이위크(Pie Week)’의 일환이다. 파이위크 참여 단체들과 전문가의 추천을 받아 내부 기준에 따라 매년 50인을 최종 선발한다. 이를 통해 기부는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누구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알리고, 한국사회에 건강한 나눔문화를 확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까지 40인의 기부자를 발표했으며, 남은 10인은 더버터 지면과 파이위크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순차적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선정에는 ▶지속성 ▶태도 ▶스토리 ▶영향력 ▶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금액보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방식으로 나눔을 이어가고 있는가’를 중시하며, 다양한 삶과 나눔의 방식을 고르게 담아내는 데 초점을 둔다.
올해 ‘2025 파이위크’ 캠페인에는 23개 비영리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국제구조위원회, 굿네이버스, 굿피플, 기아대책, 대한사회복지회, 밀알복지재단, 바보의나눔, 부스러기사랑나눔회, 사랑의달팽이, 세이브더칠드런, 열매나눔재단, 월드비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유엔난민기구, 초록우산, 컨선월드와이드, 케이와이케이파운데이션, 플랜인터내셔널코리아, 한국컴패션, 한국해비타트, 함께일하는재단, 함께하는사랑밭, 홀트아동복지회(이상 가나다순) 등이다.

팟캐스트로 시작한 기부 챌린지, 교민사회로 번져 | 김병수 기부자
“100명이 모이면 10만원을 기부합니다.” 소박한 약속이었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김병수 기부자는 팟캐스트 방송으로 사람을 모으고 기부 챌린지를 진행한다. 온라인 재능기부 형식으로 노래 이어부르기, 시 낭독, 대본 리딩 등에 참여하면 공약한 기부를 실천한다. 그의 취지에 공감한 참여자들도 기부금을 낸다. 그렇게 2021년부터 지금까지 30회가 넘는 기부 챌린지를 열었고, 누적 기부액은 4000만원이 넘는다. 12시간 노래 이어부르기로 마련한 200만원으로 함께하는사랑밭의 후원아동 연지(가명·9)에게 전자피아노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의 나눔은 호주 한인 커뮤니티로 확장됐다. 교민들과 함께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온 청년들을 위해 생활지원금을 마련했고, 튀르키예 지진 성금과 호주 어린이병원 기부도 이어갔다.

연탄도 아껴 쓰던 알뜰 부부, 30억원 기부하다 | 김순분·전종복 기부자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다. 병원 총무과장으로 일했던 전종복씨와 아내 김순분씨는 한 달 월급이 2만원이던 시절 2000원을 쓰고 나머지는 모두 저축했다. 부부는 수해로 젖은 연탄도 말려 쓰면서 세 아이를 키웠다. 그러던 중 가지고 있던 땅이 공공매입이 돼 큰 보상을 받았다. 부부는 그 돈에 대출을 보태 작은 건물을 마련했다. 30년 전 14억원이었던 건물은 시간이 흐르며 값이 크게 올랐다.
2019년 아내 김순분씨가 폐암 수술을 받은 뒤 부부는 건물을 팔았다. 그리고 30억원 전액을 바보의나눔에 그대로 기부했다. 올해로 전종복씨는 88세, 김순분씨는 80세다. 김씨는 “둘 다 크게 아픈 곳 없으니 그걸로 됐다”고 했다. “우리는 아껴 쓰는 게 몸에 배서 큰돈이 필요 없어요. 내가 쓰고 싶은 것 다 쓰면서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기부는 아껴서 하는 겁니다.”

농인 바리스타와 해외 농인 아동을 돕다 | 김애식 기부자
김애식 기부자는 목사이자 바리스타다. 그가 운영하는 교회와 카페는 조금 특별하다. 교인 20명 중 3분의 2가 농아인이고, 이 중 두 명은 카페를 운영하는 동료로 함께하고 있다. 그는 과테말라 방문을 계기로 카페를 차릴 결심을 했다. “교인이 후원 아동을 만나러 간다길래 동했했어요. 그곳에서 마리엘라를 만났어요. 산 언덕배기에 다 무너지는 판잣집에 사는 청각장애 아이였어요. 더 전문적인 돌봄이 필요한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김 기부자는 청각장애 아이들을 돕기 위해 교인들과 카페를 차렸다. 현재 카페 수익금으로 한국캠패션을 통해 전 세계 청각장애 어린이 11명을 후원하고 있다. 그는 “후원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며 “이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봉사왕’ 대학생, 엄마가 되고나서 한 일 | 김은진 기부자
김은진 기부자는 “대학시절을 떠올리면 기부와 봉사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했다. 스무 살 새내기였던 1997년, 그는 한국해비타트의 필리핀 해외 건축봉사에 참여해 일주일 동안 집을 지었다. 기부도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함께 봉사를 다녀온 지인들과 ‘자전거로 짓는 사랑의 집’ 캠페인을 시작했다. 김 기부자를 비롯한 대학생 30명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태백까지 자전거로 달리며 1km마다 1만원씩 기부를 받았다. 캠페인은 점점 유명해졌고 기업 후원이 밀려 들어왔다. 당시 직원이 10명도 안 됐던 작은 단체였던 한국해비타트도 규모가 점점 커졌다.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지금도 그는 기부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올해로 29년째다. 중2, 초3인 두 아이의 이름으로도 기부를 한다. 김 기부자는 “앞으로 아이들이 크면 함께 건축봉사를 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말라위 사랑 10년, 교실·대강당·도서관 짓다 | 김진만 기부자
김진만 기부자는 2015년 기아대책의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필란트로피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그해 열린 모임에서 본 작은 비닐축구공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꼽히는 말라위의 아이들이 갖고 놀던 비닐을 뭉쳐 만든 공이다. “어떻게든 이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그의 결심은 지금까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는 2016년 말라위를 처음 방문했고, 한국에서 열리는 축구대회 ‘호프컵’에 말라위 팀이 참가할 수 있게 모든 비용을 후원했다. 2017년에는 말라위 수도 희망중고등학교에 교실 한 동 건축을 시작으로 대강당 ‘김진만홀’을 지었고, 도서관도 마련했다. 김진만홀은 말라위 대입시험 MSCE를 치르는 공식 시험장으로 지정될 만큼 지역사회의 상징이 됐다. 그는 “우리의 작은 마음이 모여 큰 기적을 만들었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끝없는 허기 대신 기쁨을 얻는 기부 | 나태주 기부자
나태주 시인은 지난 2018년부터 월드비전을 통해 탄자니아에 사는 네마 니코데무(15)를 후원해 왔다. 해외 아동을 후원하기 전에도 나 시인은 오랫동안 꽃동네, 문학계 후학들을 위한 다양한 기부를 이어왔다. 지난 2월에는 고향인 충남 서천군에 자신이 태어난 집과 주변 토지를 기부했다. 서천군은 이곳을 문학인과 예술인을 위한 문화 창작 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충남 공주에 문을 연 나태주풀꽃문학관에 평생 모아 온 그림 150여 점을 기증했다.
나 시인은 “물질적 만족만 좇으면 끝없는 허기만 남는다”며 “기부는 돈과 시간을 내고 그보다 더 큰 기쁨과 만족을 얻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부는 결국 타인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위한 것”이라며 비우는 삶의 가치를 강조했다.

아프리카에 우물을 선물한 영양교사 | 박선우 기부자
“저로 인해 한 마을이 깨끗한 물을 마신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기쁜데요. 기부가 아니면 어떻게 제가 수백 명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초등학교에서 영양교사로 일하는 박선우 기부자는 굿네이버스 기부를 통해 아프리카에 다섯 개의 우물을 기증했다. 오래전 TV에서 본 장면을 잊지 못해서였다. 땅을 파고 맑은 물이 확 치솟는 순간,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던 모습. 언젠가 아프리카 마을에 우물을 선물하겠다는 결심을 2018년 행동으로 옮겼다. 결혼 30주년이었다.
우물 하나를 파는 데는 약 1000만원이 든다. 목표는 퇴직 전까지 총 10개의 우물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번은 현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감사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덕분에 아이들 결석률이 줄었다고요. 월급 몇 달 안 받은 셈 치면 이런 멋진 일을 할 수 있어요.”

개발도상국에서 여는 치과 진료실 | 박윤규 기부자
경남 창원에 사는 치과의사 박윤규씨는 병원 문을 자주 닫는다. 환자들도 익숙하다. 그가 수시로 섬마을, 교도소, 개발도상국으로 봉사를 떠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장 운영을 하려면 최소 10명은 필요하다. 그래도 일 년에 너댓 번은 박 기부자가 직원들의 경비와 의료 물품비를 모두 부담해 베트남·네팔·스리랑카·파키스탄 등지로 떠난다.
현장에선 원칙이 하나 있다. ‘찾아온 환자는 밤을 새서라도 본다’는 것. “줄을 한나절이나 섰는데 앞에서 차례가 끊기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평소엔 병원·학교·교도소 등에 수시로 기부금을 전달한다. 유니세프에서는 아너스클럽 회원이다. “베풀어서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기쁨으로 충분히 돌려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기부나 봉사 거리를 자꾸 찾아서 하게 될 수밖에요.”

일자리 위한 기부, 누군가의 존엄 지키는 일 | 정복수 기부자
보험영업 일을 하던 정복수 기부자에게 1997년 IMF는 주변인의 삶이 무너지는 걸 수없이 목격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회사를 떠나는 일이 반복됐다. 회사를 향한 배신감을 느끼다가 자괴감이 밀려오고 자존감이 내려앉는 과정, 결국 한 가정이 위태로워지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2010년 정 기부자는 35년 동안 근무했던 첫 직장을 떠나 보험대리점 사업을 시작했다. 그해 그의 눈에 함께일하는재단의 일자리 캠페인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바로 기부를 약정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기부를 독려했다. 정 기부자는 “사람은 일을 해야 활력이 돈다”며 “다음 목표는 시니어 일자리에 더 많은 기부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피난민 2세대, 북한이탈주민 향한 14년 나눔 | 한승우 기부자
“나눔은 ‘라잇나우(Right Now)’입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어요.” 한승우 기부자는 친가와 외가 모두 이북 출신인 피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북한이탈주민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의 바람은 열매나눔재단에 정기후원을 시작하면서 14년째 이어오고 있다. 월 10만원으로 시작한 후원금은 두 차례 증액을 거쳐 현재 월 25만원으로 늘었다. 작은 시작이라도 지금 당장 해야 의미가 있고, 한 사람의 변화가 나눔의 선순환을 만든다는 그의 신념은 오랜 기부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는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재단의 사업 방향에 깊이 공감했다”며 “조금은 더디더라도 온전히 한 사람을 살려 놓는다면,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돕는 나눔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