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는 어디서 해도 똑같다’고 하지만 그 ‘어디서’에 따라 경기 흐름은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26일 시작한 한국시리즈 잠실 시리즈는 올해 와일드카드 결정전 이후 플레이오프까지 전개된 구장과는 무대 크기가 달랐다.
타자친화형 구장인 대구와 문학, 그리고 대전에서 열린 플레이오프까지와는 다른, ‘부문별’ 가중치가 1차전부터 부각됐다. 잠실구장은 국내에서 가장 넓다. 특히 125m 거리의 가운데 담장부터 좌우중간까지 곡선이 깊다. 홈런 한두 방으로 흐름이 바뀌는 경우가 적다. 득실점 상황에서 야수간의 세밀한 플레이가 덩달아 중요해지는 가운데 수비력, 그중에서도 외야수의 활동범위로 승부가 움직이는 곳이다. 한화-LG의 한국시리즈 첫판에서는 KBO리그에서 잠실구장의 차별화된 ‘승부 공식’이 조명됐다.
■126m짜리 중견수 뜬공
1회초 1사 1루, 한화 3번 문현빈이 LG 선발 톨허스트의 4구째 컷패스트볼을 받아쳤다. 볼카운트 2-1에서 문현빈은 한복판으로 몰린 공을 100% 가까운 스윙으로 돌렸다. 가운데 담장을 향해 비행하던 공은 벽에 기대고 점프하며 포구 타이밍을 잡던 LG 중견수 박해민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트래킹 데이터로 확인된 타구 비거리는 126m. 125m을 넘겨 날아가는 뜬공 아웃이 나왔다. 외야 수비범위로 리그 최정상인 박해민의 수비력이 경기 초반 흐름을 만든 장면이었다. 잠실구장에선 홈런 공방전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한 장면이기도 했다.

삼성과 한화의 플레이오프 5경기에서는 경기당 2.4개에 이르는 12개의 홈런이 터졌다. 이날 양팀이 기록한 홈런은 단 1개였다. 5회말 LG 선두타자 박해민이 한화 선발 문동주의 125㎞ 커브를 앞쪽 히팅포인트에서 걷어내듯 들어 올리며 오른쪽 담장 폴 옆으로 살짝 넘겼다. 잠실구장에선 비거리 105m로 홈런을 만들 수 있는, 많지 않은 ‘러키존(lucky zone)’이었다.
■5회 1사 3루, 한화와 LG
한화는 0-2이던 5회초 최인호의 중견수 2루타로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후속타자인 8번 최재훈이 희생번트로 1사 3루를 만들었다. 한화 벤치에서는 9번 이도윤 타석에서 최소 외야 플라이 하나를 기대할 만한 상황. 그에 반해 LG의 수비 타깃은 명확했다. 내야수들이 전진했다. 짧은 땅볼이 나오면 홈 승부를 하려고 준비했다. LG 선발 톨허스트 또한 땅볼 유도 구종과 코스를 선택했다. 초구 포크볼이 거의 바닥으로 향했다. 2구 역시 포크볼로 보더라인 아래쪽을 벗어났지만 이도윤이 말려들었다. 3루주자 최인호가 이도윤의 2루 땅볼에 홈으로 바로 달려드는 ‘컨택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아쉬웠다. LG 2루수 신민재가 1루 쪽으로 치우친 땅볼 타구를 어렵게 걷어냈지만 몸을 일으켜 세우며 송구해야 할 만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LG는 3-0이던 5회말 신민재의 중견수 옆 3루타로 만든 1사 3루, 같은 상황에서 내야 땅볼로 득점에 성공했다. 오스틴의 3루쪽 땅볼 타구가 인플레이가 되자마자 신민재는 ‘컨택 플레이’로 홈 질주를 했다. 한화 3루수 노시환의 홈 송구가 1루쪽으로 빗나가며 세이프. 실책으로 기록됐다. 4-0으로 LG는 경기 반환점을 돌았다.
■LG 좌타라인과 한화 불펜
한화는 플레이오프에서 1~5번 타순을 좌타자로 연결한 삼성을 꺾고 다음 상대로 LG를 불러냈다. LG 좌타라인도 한화 벤치에는 고난도 문제다. LG는 1차전에서 1번 홍창기, 2번 신민재, 4번 김현수, 5번 문보경, 6번 문보경, 9번 박해민까지 좌타자를 선발 배치했다. 김경문 한화 감독은 1차전에 앞서 미디어 브리핑에서 LG 좌타라인을 두고 “엔트리에 좌완 불펜 셋(김범수, 조동욱, 황준서)이 있다. 다만 LG 좌타자들은 왼쪽 투수 공도 대체로 잘 친다. 우리 투수들을 최대한 잘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한화는 2-4로 추격한 6회말 위기에서 LG 좌타라인과 맞닥뜨렸다. 이닝 시작과 함께 김범수에 이어 3번째 투수로 등판한 정우주가 박동원을 내야 땅볼로 잡았지만 구본혁을 볼넷으로 보내고 좌타자 박해민까지 몸 맞는 볼로 출루시키며 1사 1·2루. 한화 벤치에서는 이날 경기 2번째 불펜 카드로 조동욱을 내세웠으나 계산과는 다른 결과로 흐름을 놓쳤다. 조동욱은 홍창기 타석에서 폭투로 1사 2·3루를 만들어주고 볼넷을 허용했다. 한화는 조동욱에 이어 우투수 박상원을 마운드에 올렸으나 또 다른 좌타자 신민재에게 2타점 중전 적시타를 허용했다. 한화는 2점을 더 내주고 2-8로 몰린 2사 뒤 6번 오지환 타석에서 마지막 좌완 황준서 카드를 꺼내 이닝을 끝냈지만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 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