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에는 명작 단편들이 수록돼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 잔상이 남아 있다. 『페이터의 산문』에서 발췌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금욕주의’,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별’과 ‘마지막 수업’, 민태원(閔泰瑗)의 ‘청춘 예찬’ 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안톤 슈낙(Anton Schnack, 1892~1973·사진)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Was Traurig Macht, 1942)’이었다.
안톤 슈낙은 독일 바이에른 출신으로 아버지는 헌병대 사령관이었다. 슈낙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상이 제대를 했고, 제2차대전에서는 미군의 포로로 생환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엔 전쟁시(戰爭詩)가 많으며, 『Tier rang gewaltig mit Tier(짐승과 짐승은 격렬하게 싸웠다)』(1920)는 당대 최고의 전쟁시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뒤 슈낙은 칼 암 마인에 은거하면서 과작(寡作)의 일생을 마쳤다. 그에게는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한 작가 88인의 하나라는 낙인이 평생 따라다녔다. 그의 작품은 일상의 소소함을 가슴 저리게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암울했던 전시에 한국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2007년, 김일성대학병원 소아과병동에 두유 공장을 짓는 데 도와 달라고 자선 단체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두 구좌를 기부했다. 몇 달이 지나 준공식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평양에서 왔다. 준공식을 마친 다음 우리는 병실을 방문하여 어린이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아차, 그런데 마지막 어린이에게 줄 선물이 떨어졌다. 소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문고리를 잡고 뒤돌아보니 소녀는 울먹이고 있었는데 나도 저만한 시절에 미군의 초콜릿을 받지 못해 울고 있었다. 문득 안톤 슈낙의 글 첫 구절이 그의 얼굴에 스치고 갔다. “어린이가 울고 있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 소녀가 행복했으면….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