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세상이 궁금하다. 볼 수 없는 세상이. 만져 볼 수 없는 모든 질료가. 소리로는 감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납작한 형상이 너무도 보고 싶다.
시각의 부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낯선 체험이다. 새롭게 시작되는 모험이다. 인권 영화 동아리에 가입한 것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처음으로 서로를 소개했다. 연배가 가장 높은 한 선생님은 만능 재주꾼이었다. 취미로 색소폰을 연주하고 합창 동아리를 비롯해 여러 활동에 참여 중이라 했다. 나와 동갑인 솔은 전직 특수교사였고 현재는 다섯 살 아이를 양육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시각장애인 동료상담사로 전향해 프리랜서로 일했다. 나보다 세 살 어린 이군은 보디 프로필을 찍을 정도로 멋진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싱글싱글 웃으면서도 자기주장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청년이었다. 모두가 개성이 뚜렷했다. 나는 이 모임이 순탄히 흘러갈지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각자의 캐릭터가 강했다.
인권 영화 동아리의 주최는 장애인 자활센터가 맡았는데 영화 동아리는 센터에서 처음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담당 직원은 갓 입사한 사회 초년생 사회복지사였다. 그녀는 우리를 모아놓고 앞으로의 커리큘럼을 설명하다가 점점 풀이 죽더니 목소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러고는 선임 복지사를 불렀다. 우리 네 사람은 20대 어린 담당 직원이 귀엽고 애처로워 웬만하면 지시를 모두 따라주자고 합의했다.
자활센터의 주먹구구식 지원에
열두 번도 넘게 고친 시나리오
폭염 속 매미 떼창을 겨우 피해
어색한 혼신의 연기 속 “큐” “컷”
고물 휴대전화로 찍은 우리 얘기
창피함 대신 뭉클함·그리움에 미소
첫 모임에서 우리는 매주 한 번 모여 시나리오를 쓰고 그다음에 영상을 찍기로 했다. 주최 측에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두 번째 모임이 진행되었다. 담당자는 오늘 시나리오 구성을 해보자고 했다. 나는 교육은 언제부터 시작할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난처한 기색으로 시간이 필요하다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변명했다. 나는 왠지 악당이 된 것 같아 질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주최 측의 주먹구구식 행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모임에 온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영상물을 찍고 싶은지 아이디어를 내놨다.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담아보되 밝고 코믹한 스토리로 제작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합의했다. 서로 시나리오를 써서 단톡방에 공유하기로 했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인지 겨우 두 번 만났음에도 친밀한 사이가 된 것 같았다.
영상의 내용은 솔의 연애 스토리를 바탕으로 저시력 장애인의 고충을 녹여 넣기로 했다. 나는 감독을 맡았다. 이군과 솔은 각각 남녀 주인공 역할을, 한 선생님은 내레이션과 보조 출연을 맡았다.
나는 담당 직원에게 필요한 인력과 소품 지원에 대해 말했다. 그녀는 매우 곤란해했다. 예산이 한정적이라서 둘 다 어렵다는 것이었다. 나는 왜 말이 달라졌냐며 항의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영세한 자활센터의 예산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운한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당장 촬영을 해야 하는데 지원된 것은 겨우 고물 휴대전화 두 대와 식비였다. 담당자가 은근히 눈치를 살피며 영상물은 반드시 9월 말까지 나와야 한다고 흘리듯 말했다. 모두가 어처구니없어 웃었다.
공식적인 모임을 마치고 우리끼리 모여 촬영 계획을 세웠다. 갑자기 시나리오 교육이 잡혔다. 시나리오가 다 완성된 마당에 이제 와서 교육이라니 반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기온이 점점 올라갔다. 더 더워지기 전에 촬영을 해야 했다. 더욱이 시나리오의 내용상 야외 촬영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9월 말까지 완성해달라는 주최 측의 의사를 묵살할 수도 없었다.
7월 삼복더위에 야외 촬영이 시작됐다. 촬영은 담당 직원과 내 활동지원사가 맡았다. 공원에서 남녀 주인공의 데이트 신을 찍기 시작했다. 하필 폭염특보가 내린 날이었다. 내가 “큐”를 외치자 주인공들이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나는 웃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컷” 사인을 주자 모두가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휴대전화에 녹화된 영상을 재생했다. 합창하는 매미 소리가 대사를 모두 잡아먹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정오의 땡볕이 사정없이 정수리를 후려쳤다. 나무 그늘로 피신해 방법을 찾기로 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담당자에게 마이크 지원은 어렵냐고 물었다. 그녀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보고해 보겠지만 절차가 있으니 금방 구입할 수는 없을 거라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어쨌든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 했다. 매미 소리를 들어 보니 잠시 소리가 끊어지는 타이밍이 있었다. 나는 매미가 떼창을 멈추는 순간을 노려 재빨리 신을 찍고 빠지자는 의견을 냈다. 당장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매미 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렸다.
내가 재빨리 “큐”를 외쳤다. 주인공들이 연기를 시작했다. 우리의 촬영은 거의 성공할 참이었다. 그때 멀리서 전동차가 달려와 다시 대사를 잡아먹었다. 기다렸다는 듯 매미들이 일제히 방해 공작을 벌였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웃겼다. 바닥에 주저앉아 배를 잡고 웃어댔다.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휴, 저 사람들 어쩐댜!”
근처에서 우리의 촬영을 관찰하던 어르신들이 안타까운 심정을 툭툭 던졌다. 날은 덥고 계획은 모두 실패했어도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그때까지 나는 이 프로그램을 장난처럼 여겼다. 가벼운 유희로 치부했다.
우여곡절 끝에 야외 신을 모두 찍고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한 선생님은 이번 신에서 웨이터 역할을 맡았다. 그는 흰 셔츠에 나비넥타이까지 갖춘 차림으로 등장했다. 겨우 대사 두 마디였는데 그는 이 영화에 진심이었다. 순간 나는 그의 진지한 태도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도 영상 제작에 진지한 태도를 가졌다. 담당자가 어디서 허접한 마이크를 얻어 와서는 이제부터 제대로 영상을 찍을 수 있다며 뿌듯해했다. 주인공들은 갑자기 곤란한 연기를 요구해도 수용했다. 우리는 같은 신을 몇번이고 다시 찍었다.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같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장애 정도에 따라 겪는 고충이 각각 다 달랐다. 또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했기에 친구가 된 솔이 어떻게 사랑을 하고 키워 나갔는지를 아는 계기가 되었다.
좌충우돌 끝에 마지막 촬영날이 되었다. 이날은 마네킹 소품이 필요했다. 저시력인 주인공들이 길가에 세워진 마네킹을 사람으로 오인해 길을 묻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담당자는 마네킹 정도는 어디서든 빌려 올 수 있다고 장담하더니 또 고개를 조아렸다.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시나리오를 수정한 것이 열두 번도 넘었다. 그사이 프로 연기자가 된 주인공들은 대사를 연습하고, 고물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촬영 스태프들은 영상 각도를 재고 있었다. 괜스레 웃음이 났다.
나의 “컷” 사인으로 모든 촬영이 마무리됐다. 서늘해진 바람 한 줄기가 수고한 이들 어깨를 쓸고 다녔다.
어느새 무더운 여름과는 이별이었다. 영상 편집은 담당 직원이 하기로 했다. 10월에 감상회가 있을 거라는 말에 두 주인공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차마 자기 연기를 못 보겠다며 나 혼자 감상회에 다녀와 소감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자활센터의 가을 행사 중 우리의 인권 영화 상영 코너가 있었다. 나는 관객석에 앉아 15분 정도 되는 영상을 보았다. ‘고백’이라는 제목을 시작으로 한 선생님의 내레이션이 나왔다. 두 주인공은 어색한 연기를 하며 대사를 이어갔다. 함께 녹음된 소음 때문에 대사 전달이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겪은 시간을 떠올리며 장면마다 뜨거운 열정을 느꼈다. 보기 전에는 부끄럽고 창피할 거라 생각했는데 마음이 뭉클해졌다. 지난여름의 추억이 되살아나며 그리운 미소가 지어졌다.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나는 이 모임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나는 누구보다 크게 박수를 쳤다. 비록 어설프고 엉망이지만 나는 이 새로운 도전의 끝은 해피엔딩이라 생각했다.

▲조승리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열다섯 살 때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손끝으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