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의 ‘김충현들’, 위험 작업도 ‘나홀로’···회사는 관리 책임마저 떠넘겼다

2025-06-09

2인 이상 필요한 일부 업무 하청노동자 혼자 작업

인력 충원 없어···안전 관리감독도 하청노동자 몫

“위험 외주화 넘어 안전 관리 책임 외주화 진행”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숨진 김충현씨 외에도 발전소 정비 하청노동자들이 일부 위험 작업을 혼자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김용균 특조위에서 2인 1조를 위한 인력 충원을 권고했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사망 사고가 또 발생한 것이다. 하청 노동자들이 안전 관리 책임까지 맡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돼 안전에 대한 안일한 인식이 만연한 것으로 보인다.

9일 한국파워O&M 소속 노동자 A씨가 쓴 작업 전 안전회의(TBM) 일지를 보면, A씨는 지난달 14일 에어컴프레서에 기름을 보충하는 작업을 혼자 했다. 에어컴프레서는 공기를 압축해 고압 탱크에 저장하는 설비로, 주변에 회전체들이 있어 기름을 넣을 때 유의해야 한다. 기름이 흘러 미끄러지면 회전체에 끼일 위험이 높다. A씨도 TBM에 유해위험 세부 내용으로 ‘누유로 인한 미끄럼 주의’ ‘협착 주의’를 적었다. A씨는 지난달 28일에도 메인 터빈 오일 탱크에 주유하는 작업을 혼자 했다.

한국파워O&M은 태안화력발전소 정비를 담당하는 공기업 한전KPS의 하청업체 중 하나다. 한국서부발전이 한전KPS에 정비 업무를 위탁했고 한전KPS가 2차 하청업체인 한국파워O&M에 재위탁했다. 김충현씨도 한국파워O&M 소속이었다. A씨의 TBM 일지에는 한전KPS 및 한국서부발전 공사감독자의 서명도 들어가 있다. 원청과 도급사 모두 1인 작업을 인지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021~2022년 한전KPS 하청노동자들이 쓴 TBM 일지에도 발전설비 밸브 분해 정비, 파손 등기구 교체 등을 혼자 작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작업은 중량물 취급 작업 또는 높이가 2~4m에 이르는 고소 작업으로 분류된다.

한전KPS 하청노동자들은 발전 주요 설비 정비나 고위험 작업의 경우 원칙적으로 작업자 2인 이상, 한전KPS 및 한국서부발전 공사감독자 등 최소 4인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기관의 안전관리에 관한 지침’에 따라 공공기관은 노동자가 2인 1조로 근무해야 하는 위험 작업과 근속기간이 6개월 미만인 노동자가 단독으로 수행할 수 없는 작업에 관한 기준을 마련해 운영해야 한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상 2인 1조 의무가 규정돼 있진 않다. 2019년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도 2인 1조를 위한 인력 충원을 권고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한전KPS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이 안전 관리감독 인원을 별도로 충원하지 않고 하청노동자에게 안전 관리감독 책임마저 떠넘기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대책위원회’가 한전KPS 하청노동자를 조사한 결과, 총 35명 중 10명이 관리감독자 안전보건교육을 이수해 작업자이면서도 관리감독자 역할을 맡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관리감독자는 작업에 쓰이는 기계·설비를 점검하고 작업자 방호장치 점검, 작업 중 발생한 산재 보고 및 응급조치 등을 한다.

한전KPS 하청노동자 B씨는 “안전 관리 인력 충원 없이 작업자가 안전 관리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이 문제”라며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안전 관리 책임의 외주화까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동료가 관리감독자가 되다 보니 작업 중 사고가 발생하면 동료가 책임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경미한 사고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등 유야무야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는 이날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김충현씨 사망 관련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여름에 공동 파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발전비정규직연대는 김용균 특조위가 권고한 발전 비정규직노동자 정규직화, 2인 1조 작업 의무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총고용 전면 보장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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