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벗은 여성 늘어난 이란 거리···숨 막히는 경제난의 역설, 숨통 트이는 ‘여성 인권’

2025-10-28

이란 당국, ‘대규모 시위 우려’ 히잡 단속 완화

개별 여성 대신 카페·음식점 등 폐쇄로 대응 중

이란 테헤란에 사는 여성 마르잔(49)은 최근 거리에서 경찰을 만날 때면 일부러 히잡을 벗고 걷는다. 대부분 경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친다. 마르잔은 “지하철에 타면 많은 여성들이 감시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데도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테헤란에 사는 60대 여성 파테메는 수십년 동안 히잡을 착용했지만 이제는 외출할 때도 히잡을 두르지 않는다. 그는 “돌이켜보니 이런 규칙(히잡 의무 착용)은 정말 터무니없는 것 같다. 내 머리카락은 이제 하얗게 셌는데, 머리카락을 가리든 말든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라고 말했다.

최근 테헤란에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고 머리카락을 드러낸 채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경찰이 이들을 체포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란이 지난 6월 이스라엘·미국의 공습과 지난달 유엔의 대이란 제재 복원으로 국가적 위기에 놓이자 민심을 달래고 대규모 시위를 방지하기 위해 히잡 단속을 완화했다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방의 제재 강화로 인한 경제난과 물가 상승, 실업률 상승, 빈부격차 심화가 이란 국민들을 옥죄고 있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여성 인권은 숨통이 트이고 있는 셈이다.

홀리 대그리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란이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히잡 규정을 어기는 여성들이 급증하는 데 위기감을 느끼면서도 과도한 탄압이 다시 사람들을 시위에 나서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시민들은 “최근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으로 민심이 흔들린 상황에서 히잡 단속 완화가 일종의 ‘안전 밸브’ 역할을 하고 있다”고 WP에 말했다.

지난해 말 이란 의회는 히잡 미착용 벌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 처벌을 강화한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정부는 이를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최근 “이 법을 강제하면 극심한 사회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정치인 모하마드 레자 바호나르도 “법과 처벌로 히잡을 강제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가 기득권층의 반발이 일자 “가치는 유지해야 하지만 실현 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해명했다.

이달 초 이란 정부는 공공장소에서 여성들의 복장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도덕경찰 8만명을 추가 배치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예산은 배정하지 않아 시행 여부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란 정부는 2022년 9월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끌려가 의문사한 사건과 관련해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이를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당시 시민 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2만2000명 이상이 구금당했다. 이에 대해 경제난에 대한 이란 국민의 불만이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란 핵합의(JCPOA)에서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강화한 바 있다.

이란 당국은 개별 여성에 대한 히잡 단속을 완화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단속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센터(CHRI)는 이란 당국이 지난 6월 말부터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의 출입을 허가했다는 이유로 전국의 카페·음식점·예식장·의류매장 등 사업장 50곳을 일시 폐쇄했다고 밝혔다. 다만 단속 대상이 된 사업장은 대부분 테헤란 이외 지역이다. 지난달 북부 도시 라슈트에서 당국이 히잡 미착용 여성들이 출입한 카페 여러 곳을 폐쇄했지만 이 조치는 일주일 동안만 지속되는 등 처벌 수위가 높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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