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섭의전쟁이야기] 美가 고민하는 ‘모병제의 한계’

2025-05-11

1973년 미국은 징병제를 폐지하고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이름 아래 모병제를 도입했다. 이는 안보나 국방상의 필요가 아닌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베트남전쟁 반전 여론을 잠재우고 젊은 유권자 및 학계와 진보층을 끌어들이겠다는 닉슨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공약이 실현된 것이다.

모병제는 걸프전쟁 당시 첨단무기와 정예 병력을 앞세운 승리로 인해 대성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병제가 지향한 전문 직업군인 체제는 전쟁 부담을 특정 계층에 집중시키는 구조적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미국 인구의 1%에 불과한 자원병들에 의해 수행되었고, 이들은 주로 경제적 하위 계층 출신이었다. 병력 부족으로 동일 병사가 수차례 반복 파병되었으며 ‘스톱로스’라는 사실상의 강제 복무연장제도까지 시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군인이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약물 중독, 가정 파탄, 자살 등 심각한 전쟁 후유증을 겪었다.

모병제로 인한 병력 부족은 도덕적 문제를 넘어 미국의 전략 실패로 이어졌다. 과거 미국은 징병제를 통해 수백만의 병력을 단기간에 확보함으로써 2차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과 같은 대규모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서는 모병제에 따른 병력 부족으로 증파 전략과 대반란전 교리를 온전히 실천하지 못했다. 징병제 없이 미국은 더 이상 자국의 세계 전략인 ‘두 개의 전쟁 수행’을 할 수 없다.

2024년 기준 미 육군은 약 45만명으로, 1939년 이후 가장 작은 규모다. 게다가 입대 가능 인구와 복무 자격자 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입대 기준을 완화하고 전례 없는 보너스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매년 모집 목표 대비 수천명이 부족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2023년에는 중범죄 경력자 401명을 포함해 1000명이 넘는 범죄자에게 입대 자격을 주었고 체력·지능 기준에서 미달한 지원자를 모집하기 위한 ‘미래 병사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거친 이들 중 절반은 기본 복무도 마치지 못하고 중도 탈락했다.

병역 기피의 가장 큰 이유는 죽음에 대한 공포다. 평시에도 입대를 꺼리는 상황에서 전시에 애국심만으로 자발적 입대가 급증할 것이라는 믿음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환상일 수 있다. “전쟁이 벌어졌는데 아무도 참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가정이 아니라 미국이 실제로 직면한 현실이다.

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분명한 경고를 준다. 모병제 전환은 국가 생존을 흔들 수 있는 전략적 실책이 될 수 있는 만큼 이를 표심 확보용 수단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방은 소수가 아닌 모두가 함께할 때 지속 가능하다. 예비역들의 ‘군대 욕’조차 국민이 국방에 애정이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국민 전체가 함께 짊어지지 않는 안보는 지극히 위태롭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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