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경영 부족한 ‘런던베이글뮤지엄’

2025-11-04

대기업의 외주 온라인 홍보대행사에서 3~4년간 일한 적이 있다. 외국계 은행과 외국계 부동산 기업, 유명 패션 브랜드 등을 클라이언트로 하고 있던 회사였는데 각 브랜드 담당자들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 중 하나가 SNS의 악성 댓글 또는 회사 제품 및 서비스 컴플레인에 대한 대응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원들은 ‘대응 안 하고 시간 지나면 그냥 잊히겠지’라는 생각으로 상부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악성 댓글 삭제하기에 바빴고, 대응한다손 치더라도 여러 핑계와 이유를 대며 ‘우리 잘못 아니다’라는 걸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악성 댓글을 피하고 묻어둘수록 문제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점점 더 커졌다. 각 담당자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도 결국엔 클라이언트 본사가 해결해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때 절실히 깨달을 수 있던 건 바로 ‘위기관리 방식’이었다. 삼성, 현대, LG 등의 대기업에는 왜 리스크 관리팀을 별도로 두고 있을까. 작은 위기를 빠르고 철저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그 균열이 서서히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리스크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빠른 대응이다. 이유나 핑계를 대지 말고 상대방 이야기를 빠르게 들을 것, 그리고 일정 시간 흐른 후엔 구체적인 해결 또는 보상책을 제시할 것. 이 내용은 작은 홍보대행사뿐만 아니라 식당 및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의 서비스 매뉴얼에도 적용되는 기본 프로세스다. 연 매출 900억원의 ‘런던베이글뮤지엄(이하 런베뮤)’은 위기의 순간에 이걸 떠올리지 못한 채 방어기제부터 작동시키려 했다.

지난 7월 16일, 런베뮤 인천점에서 근무하던 스물여섯의 정모씨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유가족들의 과로사 의혹에 런베뮤의 한 임원은 “과로사가 아님을 명백하게 밝힐 것”이라며 “양심껏 모범 있게 행동하시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내 수많은 이들을 공분하게 했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이 지난 10월 말쯤 언론 보도로 공론화됐으며, 회사 측은 그제야 “유가족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시스템 오류로 인해 연장 근로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이후 SNS에 올라온 대표의 사과문에서는 “과로사 여부는 회사의 판단 사안이 아니다”는 추가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런베뮤는 지난 7월, 사모펀드 운용사인 JKL파트너스에 약 2000억원에 매각됐다. 2021년 서울 종로에 첫 매장을 오픈한 후 빠른 성장세로 4년 만에 엑시트 한 것이다. 인천점에서 일하던 스물여섯 젊은 직원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것도 7월,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다. 또 최근엔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정모씨가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다”는 증언들까지 나오고 있다. 사건 발생 후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뜨뜻미지근한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아쉬운 일이다. 런베뮤는 기업의 작은 균열, 위기 대응의 기본 프로세스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던 걸까. 기업보다 직원을 먼저 생각하는 윤리경영, 런베뮤에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