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미국 동부시간) 0시 1분으로 예정된 상호 관세 본격 시행을 앞두고 미국이 경기둔화와 인플레이션이 겹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관세 정책의 성과를 과시 중이다. 5일엔 “1년 전만 해도 죽어 있던 미국이 가장 뜨거운 나라가 됐다”며 “막대한 관세 수입을 미국인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러한 반응이 오히려 “절박함을 드러낸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상호관세 끝나자…“의약품 관세 250%”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다음주 정도에 품목별 관세를 더 발표할 예정”이라며 그간 예고한 반도체와 의약품을 언급했다. 특히 의약품에 대해선 “처음에는 약간의 관세를 부과하겠지만, 최대 1년 반 뒤엔 150%, 이후엔 250%로 올릴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한국은 (시장을) 개방했을 뿐만 아니라 그건 (미국에) 엄청난 사업이 될 것”이라며 한국과의 무역 협상을 자신의 대표적 성과 중 하나로 제시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이 투자하기로 한 6000억 달러에 대해 “갚아야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내가 원하는 아무 것에나 투자한다는 것이 세부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역시 대출 또는 대출 보증 형태로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는데, 향후 해당 투자금의 성격을 놓고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인에 배당금 지급”…불리한 질문엔 “모른다”
자화자찬은 이날 오후 올림픽 태스크포스(TF) 구성 관련 행정명령 서명식에서도 계속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별 국가들이 수백억 달러를 지급하는 등 (관세로) 너무 많은 돈을 벌고 있다”며 “정부 부채를 상환하고 있지만 미국인에게 배당금을 지급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세 휴전’ 중인 중국과의 전면전을 감수해야 할 민감한 질문에 대해선 침묵했다.
그는 인도와 중국처럼 러시아 원유를 수입하는 나라들에 100%의 ‘2차 관세’를 부과할지를 묻는 질문에 “나는 퍼센티지를 말한 적 없다”며 “유사한 조치를 취하겠지만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고 했다. 또 러시아 원유 수입 문제 삼는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핵물질을 수입하는 데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그 부분은 잘 모른다”며 즉답을 피했다.
강경한 이민 정책에 따른 노동 공급 부족 문제에 대해선 “3개월 연속 불법 이민자 수가 0명을 기록했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민 정책은)내가 당선된 주요 이유 중 하나이자 가장 중요한 문제로, 나는 경제와 그(이민 정책)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고 답했다.
계속되는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등’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에는 최근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스태그플레이션 등 관세 정책에 따른 역풍 가능성에 대한 부담이 반영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7월 고용은 전월 대비 7만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예상치(10만명)를 밑도는 수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노동부가 지금까지 성과로 내세워왔던 5~6월 고용 증가치를 25만 8000명 줄여버리자 통계가 “조작됐다”며 통계국장을 경질하는 등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이날 미 공급관리협회(ISM)가 공개한 7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달(50.8)보다 0.7포인트 하락한 50.1을 기록하며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51.1)를 밑돌았다.
서비스업 분야의 고용지수는 46.4를 기록한 반면, 가격 지수는 69.9까지 치솟았다. PMI는 50보다 크면 확대 국면을, 50일보다 작으면 위축 국면을 나타낸다. 시장은 고용이 부진에 빠진 가운데 물가가 급속하게 상승하는 전형적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과 한국이 미국 車를 살까?”
현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협상의 최대 성과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으로 수출되는 미국산 자동차의 장벽이 낮아진 것에 대해서도 회의적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일본이 미국차를 원할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문가들을 인용해 “도로가 좁고 교통 체증이 잦은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연비가 좋은 소형 차량을 선호한다”며 “자동차 시장 개방을 선언해도 미국산 차가 팔릴 가능성은 작다”고 보도했다.
앞서 포드는 2016년 일본 시장 철수를 결정했고, 제너럴모터스(GM)를 포함한 미국차의 시장 점유율은 1%에도 못 미친다.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도 미국차의 비중은 20%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등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15%로 낮추면서 캐나다·멕시코 공장에서 생산 비중이 높은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50%의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까지 물 가능성이 있다.
폴 크루그먼 “트럼프 절박감 드러나”
이러한 기류에 대해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트럼프의 절박감이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고용 부진에 대해 정책 재고가 아닌 통계국장을 해임한 트럼프가 관세정책과 (이민자) 추방 조치가 물가 수치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면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른다”며 “12일 물가 지표 발표를 앞두고 상당한 물가 상승이 곧 닥칠 거란 신호가 감지된다”고 분석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어 “이미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트럼프는 머지않아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낮은 지지율과 부진한 경제 성과 상황에서 트럼프와 마가(MAGA)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선 기간 ‘프로젝트 2025’로 명명됐던 미국 민주주의 파괴 계획을 더 빠르고 노골적으로 실행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