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영국의 총영사가 된 외교관 이원우가 봉착한 문제는 교민사회의 전설적인 기피인물 N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였다. 70대 초반의 N은 대사관저에 간장을 뿌리고 대사관 정면 유리를 다 깨어버리기도 했다. 영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과의 교민 간담회에 초대하지 않았다고 한인회장에게 벽돌을 던지는가 하면 한인교회에 벌거숭이로 나타나기도 했다. 여러 번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지만, 기가 죽기는커녕 더욱 의기양양하게 행동하여 교민들로부터 완전히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대사 부인은 “우리 대사관 총영사 업무의 70%는 N을 관리하는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총영사로서 괴로운 점은 2~3일에 한 번씩 대사관을 찾아와 대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떼쓰는 N을 달래서 보내는 일이었다. 대사관 직원들이 N으로부터 자유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그가 대사관에 들어왔을 때 총영사의 방에 모셔서 2~3시간씩 똑같은 이야기를 꾹 참고 들어주는 고역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N과의 대화가 짜증이 났지만, 자꾸 듣다 보니 그가 사비를 털어서 영국의 노숙자를 돕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적지 않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서 싱가포르의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아들이 매월 보내주는 생활비로 충당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의 선행을 평가해 주기 시작하자 N도 총영사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국 교민사회의 ‘비밀’들도 얘기해주기도 했다.
N과 친해지면서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대사관저에는 왜 간장을 뿌렸습니까?” “그래도 대사라고 봐줘서 비싼 간장으로 뿌렸어.”
총영사는 속에서 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종합해 보니 N의 불만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교민들이 자신을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왔다고 무시한다는 것, 둘째는 노숙자들을 10년 이상 열심히 도와주는 선행을 하고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교섭의 기술 LSP (Logical Selling Process)
이원우 총영사는 외교부에 들어오기 전에 일했던 IBM에서 익힌 ‘교섭의 기술’ LSP는 주위에 있는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면서도 만약 일이 잘못되어 위기 상황에 봉착하면 현장에서 즉시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약자의 기술’이다.
LSP는 인사, 친밀감 표시,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기,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상황의 종합, 끝인사 및 차기 면담 약속의 6단계로 구성 되어있고, 6단계 이전에 면담 대상 고객이나 회사의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는 프로파일링은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준비 단계이다.
이원우 총영사가 LSP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느낀 3가지는 친밀감 표시,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기 그리고 반론 대응이었다. 총영사는 IBM에서 익힌 LSP를 외교부에서 적극 활용했다.
기피 인물을 표창장 수상자로 추천
2009년 가을에 총영사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동갑내기 영국인이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런던 근교 킹스턴의 1년 임기 시장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전날 시장과 부부 동반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킹스턴 시장은 내년 3월에 지역사회에 공헌이 많은 분께 시장 표창장을 수여할 계획인데 한국 교민 중에서 추천할 사람이 없는지를 물었다.
총영사는 N이 10년 넘게 영국의 노숙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점을 강조하면서 표창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강조하자 시장은 N이 훌륭한 일은 많이 했지만, 런던 시내의 노숙자를 도왔으므로 곤란하다고 했다.
총영사는 영국의 시민들을 도운 게 중요하지 그까짓 관할이 뭐가 중요하냐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결국 N은 킹스턴 시장상을 받게 되었다. 총영사는 당연히 표창장 수여식에 참여하여 축하해 주며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교민신문 사장에게 N의 수상 소식을 1면 톱으로 보도해 달라고 요청했고 교민신문도 적극 협조해 주었다.
총영사는 며칠 후 N을 만나 영국 교민 역사상 처음으로 킹스턴 시장상을 타게 된 것을 축하하며 덕담을 건넸다.
“이제 어르신께서는 우리 교민뿐만 아니라 영국인들도 존경하는 유명 인사가 되셨으니, 거기에 걸맞게 행동하셔야 하겠습니다”
그러자 N이 대답했다 “그렇고말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 후 N은 놀라울 정도로 점잖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제 교민사회가 놀라기 시작했다. 이 총영사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N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
사람을 움직이는 첫 번째는 마음을 여는 준비 ’프로파일링‘, 두 번째는 그를 기반으로 한 ’경청과 주파수 맞추기‘, 세 번째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상호 작용 반작용‘의 좋은 사례이다.
시사뉴스 칼럼니스트 / 운을 부르는 인맥 관리연구소 대표 윤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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