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세계 대기업들이 내세우는 ‘순 제로(Net Zero)’ 탄소 감축 서약이 기후 변화 대응의 실질적 행동보다는 평판 관리에 그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버밍엄 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학술지 응용 코퍼스 언어학(Applied Corpus Linguistics)에 발표한 논문에서 2020~2022년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 1,200여 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다수의 기업이 법적 의무, 사회적 기대, 동료 기업의 모방 압력 때문에 ‘순 제로’를 채택했지만, 실질적 이행 전략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보고서의 약 75%에서 ‘순 제로’라는 용어가 등장했으나, 상당수는 이를 ‘여정(journey)’이나 ‘야망(ambition)’으로 표현하며 모호하고 열망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배출 목표 설정이나 보고는 강조됐지만, 재생에너지 전환이나 구조 개혁 등 체계적 변화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다. 이는 기술 혁신에 대한 낙관을 우선시하는 기업 서사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석유·가스 기업들은 직접 배출만 다루고 제품 사용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은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금융업계는 ‘넷제로 자산 소유자 동맹’ 등 국제 제휴 참여를 강조했지만, 실제 감축 전략은 불투명했다.
연구를 주도한 마테오 푸올리 박사는 “순 제로 공약은 진일보한 시도지만 신뢰성은 투명성과 측정 가능한 진전에 달려 있다”며 “현 단계에서는 정당성을 유지하려는 상징적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더 명확한 전략과 강력한 약속이 없다면, 이는 기업 그린워싱의 또 다른 장이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공동 연구자인 아니카 비엘리츠 박사도 “규제 당국, 투자자, 시민 사회가 기업의 순 제로 주장을 더욱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며 “진정한 기후 리더십은 말뿐이 아닌 집행 가능한 행동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또한 연구진은 BP와 쉘 등 주요 에너지 기업이 최근 기후 약속을 철회한 사례를 언급하며, 지정학적·경제적 압력 속에서 기업 기후 전략의 회복력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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