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출간작품 한강 81건 ‘압도적’
황석영 64건·김영하 52건 뒤이어
10년 내 또 받는다면 유력 후보
시인은 연륜의 김혜순 우선 거론
아시아권 수상 10∼20년 후 관측
해외 문단 잇단 호평 중견 신경숙
부커상 최종 후보 올랐던 정보라
젊은 작가 김애란·조해진 등 주목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사탄탱고’의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지난달 선정됐다. 1년 전 한국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라 어느 때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바라보면서 많은 한국 문학팬은 한강 작가에 이어 한국 작가 가운데 누가 다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될지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6일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지원 데이터 자료를 분석하고, 교수 및 평론가, 시인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포스트 한강’ 후보군의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고 다채로웠다. 만약 10년 이내에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다시 받는다면 한강 작가와 함께 후보로 자주 거론됐던 황석영과 이승우 소설가, 김혜순 시인 등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지 않고 10여년 뒤인 2040년대 이후 한국 작가의 수상을 기대할 수 있다면 신경숙, 김영하, 김애란, 조해진, 김언수, 정보라 등 기존 후보군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들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번역 건수로 보면 황석영 김영하 앞서… 신경숙 정유정 김애란 정보라 등 맹추격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특성상 번역을 통해 세계 독자의 손에 닿아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양질의 작품 번역이 중요하다. 한강 작가의 경우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전후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작품이 번역 출간된 건수는 모두 81건으로, 다른 작가들을 압도했다.

다른 변수를 빼고 단순히 해외에서 작품이 번역 출간된 양을 기준으로 볼 경우(한강 작가 제외), 황석영 작가를 비롯해 김영하, 신경숙, 정유정, 조남주, 김애란, 공지영, 김혜진, 김언수, 정보라 등이 주요 후보군으로 거론될 수 있다. 한국문학번역원 지원 아래 1991년부터 해외에서 번역 출간된 작품 건수가 많은 작가는 10월 말 현재 모두 64건을 기록 중인 황석영 작가였다. 황 작가는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작인 ‘철도원 삼대’를 비롯해 많은 소설 작품이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스웨덴어 등으로 번역됐다.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비롯해 52건이 해외에서 번역 출간된 김영하, ‘외딴방’과 ‘엄마를 부탁해’ 등 39건이 번역 출간된 신경숙 작가가 그 뒤를 이었다.
◆언제 받느냐가 최대 변수… 10년 내라면 황석영, 이승우, 김혜순 유력
한국 작가가 언제 다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 올해 상을 받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국적은 헝가리인데, 헝가리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2002년 임레 케르테스에 이어 23년 만이었다. 지난해 한강 작가가 수상했기에 한국 작가의 또 다른 수상 역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된다.
시인인 곽효환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메이저 언어가 아닌 이른바 비중심 언어권의 수상은 번역과 독자 확보의 과정과 시간을 거쳐야 하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고 아시아권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대체로 10여년 주기로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 우리도 한 10∼20년 길게 보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전 원장은 그러면서도 “만약 10년 내에 또다시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한강 작가와 함께 이미 알려진 작가들이 수상할 수도 있다”며 이럴 경우 황석영, 이승우 소설가와 김혜순 시인 등이 부각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우선 1943년생 원로 작가인 황석영은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가로 1970년대 ‘객지’와 대하소설 ‘장길산’, 1980년대 ‘무기의 그늘’, 2000년대 ‘오래된 정원’, ‘손님’, 2024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던 ‘철도원 삼대’ 등 주옥같은 작품을 발표해 왔다. 평론가인 오태호 경희대 교수는 “대표적인 리얼리스트로,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전통 양식과 현대적 서사의 조화를 꾀하고 있는 점이 높이 평가된다”며 “빼어난 번역을 통한 세계 시장 진출, 작품의 보편성과 문학적 독창성, 활발한 국제적 활동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힌다”고 황 작가를 분석했다.
장편소설 ‘가시나무 그늘’, ‘생의 이면’ 등을 발표한 이승우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가 황석영과 함께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로 언급하기도 했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인간의 고통과 그것을 신성과 사랑으로 견디고 넘어서려는 보편성으로 세계문학에 가장 근접한 소설가”라고 호평했다. 곽 전 원장도 “이 작가의 소설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 지식인 또는 보통 사람들이 갖는 고뇌를 잘 드러낸다”며 “한강의 ‘채식주의자’처럼 서구 독자들에게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1955년생인 김혜순 시인도 시집 ‘날개 환상통’이 2024년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는 등 여성으로서의 독특한 시적 세계관과 ‘신들린 언어의 주술사’로 불릴 정도로 강렬한 문체로 주목받는다. 곽 전 원장은 “한국 시인 가운데 세계 시단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 시인이 받는다면 김 시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교수 역시 “여성적 사유와 필치, 인간 내면의 고통과 치유의 언어로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이밖에 시인으론 김 시인 외에도 나희덕과 진은영 시인이 거론되기도 했다. 유 교수는 “고전적 인간 이해와 시대의 고통에 대한 예민하고도 연대적인 상상력으로 가장 완성도 높은 시를 써가는, 서구에도 많이 알려진 대표 시인”(나희덕), “사랑과 연대라는 지상의 명제를 가장 경쾌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보여준 대표적인 한강 세대의 시인”(진은영)이라고 두 시인을 호명했다.

◆중견 신경숙, 김영하 주목… 김애란, 조해진, 정보라, 김언수, 김숨 등도 부상
만약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2040년대에 다시 이뤄진다면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강 작가보다 약간 윗세대인 신경숙, 김영하 소설가와 한강 작가와 동년배이거나 후배 세대인 김애란, 조해진, 정보라, 김언수, 김숨, 편혜영, 김연수 등이 자주 하마평에 오른다.
내성적 문체와 감각적 묘사가 돋보이는 신경숙은 2012년 ‘엄마를 부탁해’로 영국의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한 이래 세계 무대에 많이 알려졌다. 오 교수는 “인간 내면의 탐구, 비유와 상징을 활용한 섬세한 문체, 정교한 서사로 독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한국의 대표 작가”라면서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외문학’(2011), 폴란드에서 ‘올겨울 최고의 책’(2012)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문학의 세계문학적 지평을 넓히고 있다”고 평했다.
김영하 역시 개성적인 감각과 자유로운 상상력이 주목받으며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활발하게 작품이 번역되고 있다. 오 교수는 “특히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일본에서 2018년 번역문학대상을 수상했고, 2020년 독일 추리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삶과 죽음에 관한 블랙 코미디적 성찰’로 주목받은 바 있다”고 평했다.
르 클레지오가 일찍이 주목한 김애란은 2014년 ‘나는 편의점에 간다’(‘달려라, 아비’ 프랑스어판)로 프랑스 비평가들과 기자들이 선정하는 ‘리나페르쉬 상’을 수상했다. 곽 전 원장은 “한국 문학이 갖고 있는 전통적인 요소와 가족적인 서사가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영화 ‘로기완’ 원작소설을 쓴 조해진 역시 자주 호명됐다. 오 교수는 “주변부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애의 통증을 따뜻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작가”라며 “상실과 고통, 기억과 치유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현대인이 마주하는 숙명적 고독을 깊은 성찰과 따뜻한 감수성, 유려한 문체로 서사화하고 있다”고 평했다.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도 신화와 전설, 저주와 공포 등 환상적인 호러 이야기를 현실적 소재와 함께 잘 풀어내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곽 전 원장은 “장르문학 쪽에서 보면 현재 한국 작가 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고, 특히 그의 상상력이 해외 독자들과 접점의 폭이 상당히 넓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장편소설 ‘캐비닛’과 ‘설계자들’이 영어로 번역돼 호평받고 있는 김언수를 꼽는 사람도 많았다. 곽 전 원장은 “본격 문학과 장르물 중간 또는 양쪽을 오가면서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이미 세계 시장에서 높은 선인세를 받고 있다”고 분석했고, 오 교수 역시 “기발한 상상력을 토대로 독특한 문학 세계와 촘촘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을 형상화함으로써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이야기꾼”이라고 평했다.
편혜영도 ‘홀’로 2018년 미국 추리문학상인 셜리잭슨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유 교수는 “재난과 고통의 시대에 던지는 묵시록적 진단과 해석으로 세계문학적 보편성을 가진 소설가”라고 평가했다. 김숨도 장편소설 ‘L의 운동화’를 비롯해 황폐한 세계를 배회하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형상화해 주목받고 있다. 유 교수는 “역사적 상상력과 치밀한 고증으로 현대사의 굴곡진 그늘을 탐사하는 대표적인 한강 이후 세대 주자”라고 호평했다. 이들 외에도 은희경, 김연수, 조남주, 윤고은, 박상영, 손원평, 천명관, 박상우, 손보미 작가 등도 거론되기도 한다. 다만, 한국 작가가 언제 다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지 알 수도 없고, 문학에서 상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스펙트럼이 넓은 한국 작가들이 어떤 작품으로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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