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적인 선율 위를 미끄러지듯 컨토션(연체 곡예) 퍼포머 세 명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한 덩어리 조각처럼 보였던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객석의 탄성은 신음으로 변해갔다. 몸이 불가능한 각도로 휘어지고, 한 팔로 몸 전체를 지탱한다. 세 명이 서로를 지지하며 올라서 구조물을 쌓더니 어느 순간 다리를 얼굴 앞으로 넘기고 빠르게 360도 회전을 한다. 무대 위 황금빛 잔상을 남기며 상식을 초월한 움직임이 이어지는데, 뒷자리 어디선가 비명같은 감탄사가 들려왔다. “정말 사람 몸이야!?”
‘태양의서커스’의 <쿠자>가 7년 만에 돌아왔다. 2018년 한국 공연 당시 20만명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았던 <쿠자>는 2007년 초연 이후 23개국에서 800만명을 동원한 서커스 공연이다. 부산에 이어 지난 11일부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이동식 공연장 ‘빅탑’을 차리고 아찔한 곡예를 이어가고 있다.
산스크리트어로 ‘상자’를 의미하는 <쿠자>는 단순히 곡예의 행진이 아니라 ‘이노센트’라는 순진한 광대가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빅탑 안 원형 서커스 무대의 중심은 화려한 장식과 직물로 꾸며진 ‘바타클랑’이라는 2층 구조물이다. 베일이 걷히고 이노센트가 여는 상자 안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트릭스터’가 이 여정의 안내자로서 다양한 곡예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쿠자>는 서커스의 두 가지 전통, 곡예와 광대술이 결합된 ‘태양의서커스’의 근원에 충실한 버전이라고 한다. 균형 잡기, 공중 묘기, 줄타기, 후프, 공중제비, 널뛰기 등등 서커스에서 떠올리게 되는 온갖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번 한국 공연에선 공중에서 후프를 타고 날아다니며 묘기를 선보이는 ‘에어리얼 후프’가 새로 추가됐다.


가장 큰 환호성이 터지는 곡예로는 엄청난 속도의 바퀴를 활용한 ‘휠 오브 데스’를 꼽을 수 있다. 공중에는 무게가 1600파운드(약 725㎏)에 달하는 거대한 원 두 개가 매달려 있다. 두 명의 아티스트가 원 안팎에서 끊임 없이 뛰어오르고, 줄넘기를 하며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곡예를 이어간다. 후반부에 원 바깥에서 허공으로 뛰어오르기 시작하면 객석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나올 정도로 아찔하다.
인간 신체 능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밸런싱 체어’는 공연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장비는 8개의 의자와 받침대. 아티스트가 오로지 근력 만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의자를 하나씩 쌓아올려 7m의 탑을 만든다. 마지막에 의자를 사선으로 올리고 그 위에서 한 팔로 몸을 지탱하는 장면은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쿠자>를 보고 있으면 인생 또한 아슬아슬한 곡예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태로운 줄 위에서도 끝내 균형을 잡듯, 공연이 어찌어찌 결말에 이를 것이라는 믿음이 묘한 위로가 된다. 강함과 연약함, 균형과 불안정, 위험과 환희가 교차하는 매 순간, 서커스는 인생의 은유가 된다. 제이미슨 린덴버그 예술감독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쿠자>의 중요한 테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삶 속에서 겪는 고난과 역경, 기쁨, 즐거움을 보물 상자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알록달록 천막 입구부터 풍겨오는 달짝지근한 팝콘 냄새를 따라 자리에 앉으면 두 시간여 공연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티켓 가격은 8만~32만원으로 만만치는 않다. 서울 공연은 12월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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